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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동해건설산업 2025. 10. 12. 15:01

지식[사묘/제단]

하느님이 보우하사 (참성단, 환구단)

 

옛날 사람들은 신이 있어 인간들의 모든 것들을 주관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특히 하늘의 신은 나라의 흥망을 좌우한다하여 나라를 처음 세우는 임금님은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하늘의 신에 이를 알리고 복을 내려 달라고 빌었습니다. 또한 봄에는 적당한 날씨로 풍년이 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빌고, 가을에는 감사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제단을 쌓았던 곳들로 잘 알려진 곳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첨성단

참성단(사적)

참성단

해발 468m 마니산에 자리 잡고 있는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봄과 가을에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전해지는 제단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제단의 기초는 하늘을 상징하여 둥글게 쌓았고 단은 땅을 상징하여 네모로 쌓았습니다. 첨성단은 서해의 요충지로 흩어져 있는 섬들과 내륙을 한눈에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있습니다. 첨성단은 여러번의 보수를 거쳤습니다. 1270년 고려시대에 고쳤으며 1639년 조선 인조 때에 허물어져 다시 쌓았으며, 1700년 조선 숙종 때에도 보수가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전국체전 시, 제천단 앞에 마련된 향로에서 7선녀에 의하여 태양열을 거울 인화하거나 구름이 낀 흐린날에는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부싯돌로 성화를 점화, 체육대회장 성화대까지 운반하고 있습니다.

 

환구단

환구단(사적)

환구단

환구단 또는 원단이라고도 하며 하늘에 제사를 위해 원형으로 쌓은 단입니다.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에 위치해 있으며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897(광무 원년) 10월 고종 황제의 즉위를 앞두고 남별궁터에 환구단을 쌓았고, 1011일 고종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친히 환구단에 나아가 하늘의 제사를 드린 후 황제의 즉위식을 올리고 대한제국을 선포하였습니다. 일제가 19112월에 환구단의 건물과 그 땅을 조선총독부 소관으로 하고, 1913년 환구단을 헐었으며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조선호텔)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단의 북쪽 모퉁이에 있는 황궁우의 팔각당(신위를 봉안한 곳)만이 대한제국의 기울어진 국운을 함께 슬퍼하고 있습니다.

 

궁궐은 버려도 신주는 지켜야 한다 (종묘 정전)

 

왜 세워졌을까요?

조선왕조는 나라를 세우고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돌아가신 왕이나 나라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종묘는 돌아가신 왕들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어진 곳이었습니다.

 

언제 지어졌을까요?

조선왕조가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옮긴 해인 1394(태조3) 에 종묘를 짓기 시작하여 그 다음해인 13959월에 완성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짓고, 그 후 계속 관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요?(구성)

종묘 정전(국보)

종묘 정전

종묘 정전 내부

종묘 정전 내부

원래 종묘는 지금의 정전을 말하는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정전과 영녕전을 모두 합쳐 말합니다.

정전은 돌아가신 5대조까지의 임금님 위패와, 훌륭하신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현재 그곳은 19실로 이루어져 있고 49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정전의 서쪽에 위치한 영녕전은 조선을 세운 태조의 4대 조상과, 정전에 모셔졌다가 옮겨진 왕과 왕비, 그리고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왕과 왕비의 칭호를 받은 분들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16실에 34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정전의 뜰 앞에는 조선시대의 훌륭한 신하 83분의 위패가 모셔진 공신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전사청 · 재실 · 향대청 · 칠사당 등 여러 건물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 곳일까요? (역할)

조선시대에는 정전에서 매년 봄·여름·가을·겨울과 음력 12월에 나라의 큰 제사를 지냈고, 영녕전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 그리고 음력 12월에 일정한 날을 따로 정하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현재는 전주 이 씨의 모임에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 종묘제례라는 제향 의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제사를 드릴 때는 기악과 노래와 무용을 포함하는 종묘제례악이 함께 거행되고 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지어졌을까요? (건축양식)

정전은 나무로 지어진 건축물 중, 그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궁전이나 절이 화려하고 장식적인데 반해, 종묘는 제사를 모시는 곳이므로 단정하고 검소하며 당당한 기품과 위엄이 느껴지도록 지어졌습니다. 정전은 크게, 영녕전은 작게 지어졌는데 이는 그 곳에 모셔진 분들의 업적이 높고 낮음에 따라 규모를 달리하여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종묘의 건물은 자연의 모습을 닮으려 ㅡ자(일자)형으로 지어져 앞에서 보면 25칸의 본 건물의 길고 깊은 선이 인상적이며, 쌓아 올린 단과 무거운 지붕의 수평선은 안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땅의 신, 곡식의 신이시여 (사직단)

 

나라의 운명을 사직이라고도 합니다. 사는 땅의 신, 직은 곡식의 신으로 땅과 곡식이 없으면 살 수 없었던 옛날에는 임금님이 나라를 세우면 모두 사직단을 만들어 백성을 위한 제사를 지냈으며, 그리하여 '사직'이라는 말은 나라나 조정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 선덕왕 때 처음 사직단을 세웠으며, 수도뿐 아니라 각 지방에도 관가의 서쪽에 사직단을 세우고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으며 나라와 백성들의 편안함과 풍년을 빌게 하였습니다.

 

사직단

사직단(사적)

사직단

예로부터 땅에 제사를 지내던 곳인 사직단은 나라의 융성과 백성들의 편안함을 기원하기 위해 쌓은 제단입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사직단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서울을 정하고 궁궐, 종묘를 지을 때 함께 만든 것입니다.

1934(태조 3)에 고려의 예절을 따라 땅의 신을 제사를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께 제사를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였습니다. 1897년 고종이 황제에 오르자 이곳을 태사, 태직이라고 고쳐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조상들은 사직을 종묘와 함께 중하겨 여겨 중춘(봄의 가운데 날), 중추(가을의 가운데 날), 동지가 지난 후 세 번째 되는 '개의 날'을 택하여 1년에 세 번 제사를 지냈습니다.

 

사직례

제례는 문묘와 종묘의 예를 따르고 나라와 백성의 평안함과 풍년을 빌기 위해 보통 정월 상순일에, 그리고 2월과 8월의 상순에 지냅니다. 그 밖에도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와 가뭄에 비를 기월하는 제사인 기우제 등을 여기에서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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