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 물
조선왕조의궤 수릉능상사초개수도감의궤[朝鮮王朝儀軌 綏陵陵上莎草改修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708
연대 : 1900년
재질 : 종이에 먹과 채색
크기(cm) : 가로 33cm, 세로 44.8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건 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수릉능상사초개수도감의궤는 1899년(광무 3) 8월 6일~25일까지 익종(翼宗, 1809~1830)과 비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의 능인 수릉에 대한 개수(改修)과정과 1899년 9월~12월에 걸쳐 의궤를 편찬한 과정을 기록하였다.
조선왕조의궤 혜능석물추배도감의궤[朝鮮王朝儀軌 惠陵石物追排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015
연대 : 1722년
재질 : 종이에 먹과 채색
크기(cm) : 세로: 46cm, 가로: 33.1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건 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혜능석물추배도감의궤는 1722년(경종 2) 경종(景宗, 재위 1720∼1724)의 원비(元妃) 단의왕후(端懿王后, 1686~1718)의 능인 혜릉(惠陵)에 석물을 추가로 배치한 것을 기록한 의궤이다.
단의왕후는 왕세자빈의 신분으로 승하하였으나 1720년 경종이 즉위하여 왕후로 추존되면서 묘소가 혜릉으로 봉릉되었다.
조선왕조의궤 철종빈전혼전도감의궤[朝鮮王朝儀軌 哲宗殯殿魂殿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695
연대 : 1863년
재질 : 종이에 먹과 채색
크기(cm) : 가로 31.5cm, 세로 44.8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건 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철종빈전혼전도감의궤는 1863년(고종 즉위년) 12월 8일에 창덕궁(昌德宮) 대조전(大造殿)에서 승하한 철종(哲宗, 재위 1849~1863)의 국상을 거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빈전혼전도감(殯殿魂殿都監)에서 국상을 준비하고 거행한 절차를 기록한 의궤이다.
빈전혼전도감은 초종(初終)부터 초상(初喪)의 제반 절차와 제사를 주관하는 한편, 관을 모시기 위한 빈전(殯殿)을 마련하고 발인 이후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올리는 혼전(魂殿)을 준비하는 일 등을 주관하였다.
조선왕조의궤 철종국장도감의궤[朝鮮王朝儀軌 哲宗國葬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696
연대 : 1863년
재질 : 종이에 먹과 채색
크기(cm) : 가로 32cm, 세로 45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건 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철종국장도감의궤는 1863년(고종 즉위년) 12월 8일에 창덕궁(昌德宮) 대조전(大造殿)에서 승하한 철종(哲宗, 재위 1849~1863)의 국장(國葬)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의궤이다. 총4책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의궤에는 국장의 진행 과정과 각 관청 간의 연계와 재정의 출납, 인력의 동원과 사용한 제기 및 의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의궤 철종예릉산릉도감의궤[朝鮮王朝儀軌 哲宗睿陵山陵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697
연대 : 1863년
재질 : 종이에 먹과 채색
크기(cm) : 가로 31.6cm, 세로 44.6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건 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철종예릉산릉도감의궤는 1863년(고종 즉위년) 12월부터 1864년 4월까지 진행된 철종(哲宗, 재위 1849~1863)의 예릉(睿陵) 조성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이 의궤의 서두에는 1863년 12월 8일 철종이 창덕궁(昌德宮) 대조전(大造殿)에서 승하하자 12월 17일 빈청회의를 통해 능호를 예릉으로 정하고 12월 27일에 희릉(禧陵)의 근처에 터를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상·하 2권으로 구성되었으며 상책은 전체 공사의 과정을 산릉도감 도청에서 기록한 도청의궤(都廳儀軌)이고, 하책은 실무를 담당한 각소의 역할이 기록된 각소의궤(各所儀軌)이다.
이성윤 초상[李誠胤 肖像]



유물번호
연대 : 1613년경(조선시대)
재질 : 지류(회화)
크기(cm) : 178.4cm x 106.35cm(그림), 256.5cm x 122.7cm(전체)
이성윤(李誠胤, 1570~1620)이 1613년(광해군 5)에 위성공신(衛聖功臣) 2등(等)에 녹훈(錄勳)될 때 하사받은 위성공신상(衛聖功臣像)으로 추정되는 초상화이다.
17세기 초반의 가장 전형적인 공신도상이다. 화면의 인물은 단령(團領)을 입고 공수(拱手)한 뒤 교의(交椅)에 앉아 있으며 반우향(半右向)을 하고 있다. 바닥에는 화려한 채전(彩氈)을 깔고 두 발은 돗자리를 깐 목제(木製) 의답(椅踏) 위에 약간 팔자형(八字形)으로 벌린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정교하고 치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수작으로 위성공신(衛聖功臣)이면서 종실(宗室) 어른으로서 높은 인품(人品)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하여 전체적으로 금은(金銀)을 화려하게 사용하고, 천연 석채를 사용한 수준 높은 초상화이다.
광해군(光海君, 재위1608~1623)은 1613년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자신의 즉위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위성공신과 익사공신(翼社功臣), 정운공신(定運功臣), 형난공신(亨難功臣) 등을 내렸다. 그러나 1623년의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광해군이 폐출되자 모두 삭훈(削勳)되고 공신녹권(功臣錄券)과 공신도상도 국가에서 수거하여 소각했다. 이로 인해 광해군 때의 공신상은 그 실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초상화와 함께 이성윤 위성공신교서가 전해져 일부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탁유물로 관리하고 있다.
근사록[近思錄]





유물번호 : 고궁3652
연대 : 1436년
재질 : 종이
크기(cm) : 가로: 20.5cm, 세로: 34.2cm
근사록(近思錄)은 중국의 송나라때에 성리학의 기본이 되는 문헌을 모아 엮은 책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의 필독서이다.
근사록의 권14말에는 1436년(세종 18) 6월에 쓴 김문(金汶, ?~1448)의 발문이 있어 인출연대(印出年代)를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활자(活字)인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인쇄된 완질본(完帙本)이다.
서지학 및 성리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품위있는 장서인(藏書印)이 4방 찍혀 있어 가치가 크다.
일월반도도 병풍[日月蟠桃圖 屛風]



유물번호 : 창덕6443, 창덕6444
연대 : 19세기 ~20세기 초
재질 : 비단에 채색
크기(cm) : 창덕6443 가로: 273.8cm, 세로: 332.8cm I 창덕6444 가로: 263.8cm, 세로: 329.4cm
해와 달, 그리고 바다와 복숭아 등을 그린 병풍이다. 2좌의 4첩병풍이 세트를 이루고 있다.
이 병풍은 궁중의 혼례나 잔치 등 궁중 행사 때 펼쳤던 십장생도병풍에 등장하는 10가지 소재 중에서 일부를 선택하여 꾸민 것이다. 4폭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화면에 왕을 상징하는 붉은 해를 그리고 다른 4폭의 화면에 백색의 달을 그렸으며, 해와 달 좌우로 산봉우리를 배치하였다. 그 앞쪽으로 억센 바위위에 한 개만 먹어도 천수를 누린다는 복숭아 나무가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운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십장생의 하나인 복숭아 나무는 삼천 년에 한번 꽃이 피고, 삼천 년에 한번 열매가 열며, 동방삭이 이것을 먹고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복숭아 나무 뒤 쪽으로는 넘실거리는 물굽이를 표현하여 2좌의 4첩병풍은 두 그림이 서로 대칭을 이루도록 하였다.
이 병품의 소재와 구성이 일월오봉도와 유사하지만 화면 양옆에 소나무 대신 복숭아나무를 그린점에서 차이가 있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불사(不死)의 여왕 서왕모(西王母)의 정원에서 자란다는 과일인 반도(蟠桃)를 그린 이 그림은 왕실의 영원함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複刻天象列次分野之圖 刻石]



유물번호 : 창덕12938
연대 : 조선시대
재질 : 석제
크기(cm) : 가로 108.5cm, 세로 207cm, 두께 30.5cm
별자리를 돌에 새겨놓은 천문도이다.
둥글게 그린 하늘 안에 1,467개의 별을 그리고, 아래에는 천문도를 만들게 된 경위와 참여자 명단을 적었다.
1395년 처음 새긴 각석의 돌이 닳아 잘 보이지 않게 되어 1687년(숙종 13)에 다시 천문도를 제작한 것이 이 각석이다. 그 연유와 과정 등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상위고(象緯考)』와 『서운관지(書雲觀志)』에 기록되어 있다. 구도상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1395년(태조 4)에 처음 만든 것과 완전히 같고, 이에 대한 설명문은 권근(權近, 1352~1409)이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