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 보
창경궁 자격루 항아리[昌慶宮 自擊漏 漏器]
유물번호 : 창경2
연대 : 조선 중종 31년(1536)
재질 : 금속


‘스스로 치는 시계’라는 뜻의 자격루는 물의 증가나 감소에 따라 자동으로 시각을 알려주는 첨단 물시계로, 조선 시대의 국가 표준시계였다. 자격루 누기는 자격루를 구성하는 장치들 중 일부로, 흘려보내는 물을 담는 청동항아리인 대파수호(大播水壺)‧중파수호(中播水壺)‧소파수호(小播水壺) 3점과 파수호에서 흘러나온 물을 받는 원통형의 청동항아리인 수수호(受水壺) 2점이다.
세종 16년(1434) 종·징·북을 자동으로 울려 시각을 알려주는 자격루가 경복궁 보루각(報漏閣)에 설치되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으며, 중종 31년(1536) 창경궁에 추가로 설치했던 자격루의 파수호 3점과 수수호 2점이 남아 있다.
수수호의 표면에 하늘로 솟아오르는 용 문양이 양각으로 표현되어 있고, 상단에는 자격루 제작에 참여한 12명의 직책과 이름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대파수호의 표면에는 자격루 제작시기를 알려주는 ‘가정병신육월 일조(嘉靖丙申六月 日造)’가 은입사 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鮮王朝實錄 五臺山史庫本]
유물번호 : 고궁2691
연대 : 1606년(조선시대)
재질 : 종이에 먹
크기(cm) : 세로: 38.9cm, 가로: 31.0cm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일어난 순서대로 기록한 책이다. 이 중 오대산사고본(五臺山史庫本)은 1606년(선조 39)경에 설치된 오대산사고에 보관된 실록이다.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본을 제외한 나머지 실록들이 모두 소실되자 1603년(선조 36) 7월부터 1606년 3월까지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 4부를 재간행했다. 그리고 강화·태백산·묘향산·오대산 등지에 사고를 새로 건축하여 서울의 춘추관사고와 함께 5곳의 사고에 실록을 보관하였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경에 일제에 의해 동경제국대학 도서관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반출되었고,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화를 면한 오대산사고본 실록 중 27책이 1932년에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된 이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을 거쳐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일본에 남아있던 47책이 2006년에 추가로 환수되어 다음해 국보로 지정되었다. 추가로 1책이 2018년 환수, 지정되면서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오대산사고본 총75책을 보관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중종, 성종, 선조, 효종연간의 실록이다.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德宮 摛文院 測雨臺]
유물번호 :
연대 :
재질 : 대리석
크기(cm) : 가로 45.3, 세로 45.5㎝, 높이 30.3㎝

조선시대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를 올려 놓았던 대석(臺石)이다.
원래는 측우기와 측우대는 창덕궁 내 이문원(摛文院, 규장각의 부속건물) 앞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라고 부른다. 현재 측우기는 남아있지 않다.
측우대의 4면에는 측우기를 세우게 된 연원과 당시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 측우대 위에 놓였던 측우기는 1770년(영조 46)에 세종대의 제도를 따라 만들었으며, 1782년(정조 6) 여름에 기우제를 지낸 후 비가 내렸고, 정조의 명으로 측우기를 설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유물에 많이 쓰인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이 측우대는 세종 조에 시작한 조선 측우기 제도가 영조 대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實證)해주는 유물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象列次分野之圖 刻石]
유물번호 : 창덕12937
연대 : 1395년
재질 : 석재
크기(cm) : 세로: 211cm, 가로: 123cm, 지름: 9.7cm, 두께: 12cm, 성도 원지름: 76cm

천체의 형상을 직육면체의 돌에 새겨 놓은 지도이다.
이 지도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윗부분에는 별자리를 그리고, 아래부분에는 천문도의 이름, 작성 배경과 과정, 만든 사람의 이름과 만든 시기를 기록하였다. 별자리 그림의 중심에는 북극을 두고 황도(黃道, 태양이 지나는 길)와 남북극 가운데로 적도(赤道)를 표시하였다. 황도 부근의 하늘은 12개로 나누고 1,467개의 별들을 점으로 표시하여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별을 총망라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 달, 5행성(수성, 금성, 토성, 화성, 목성)의 움직임을 알 수 있고, 그 위치에 따라 절기를 구분할 수도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고자 1395년에 만들것을 명하였다. 제작에는 권근, 유방택 등 11명의 천문학자들이 참여하였으며, 고구려의 천문도를 표본으로 하면서 오차를 고쳐 완성하였다.
이 석각천문도는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백자달항아리[白磁大壺]
유물번호 : 기탁유물
연대 : 조선시대
재질 : 도자기(백자)
크기(cm) : 높이 43.8cm, 몸통지름 44cm



조선시대에 제작한 백자이다.
둥글고 유백색(乳白色)의 형태가 둥근 달을 연상하게 되어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이 백자는 완전한 좌우대칭은 아니지만 약간 비틀어지고 변형된 상태가 형태의 변화를 주면서 생동감을 갖게 한다.
원래 왕실의 백자는 조선왕조 유일의 관요(官窯)인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 백자제작소(경기도 광주)에서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 백자는 광주 지역에 있던 340여 개소의 가마 중 금사리 가마에서 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가 대형인 탓에 한번에 물레로 올리지 못하고 상하 부분을 따로 만든 후, 두 부분을 접합하여 완성하였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탁유물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