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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문화유산

동해건설산업 2025. 10. 26. 14:30

보 물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유물번호 : 고궁4161

연대 : 고려 13세기

재질 : 나무, 나전

크기(cm) : (몸체) 가로: 32.8cm, 세로: 18.4cm, 높이: 15.4cm (뚜껑) 가로: 32.8cm, 세로: 18.4cm, 높이: 3.8cm (속상자) 가로: 31.6cm, 세로: 17.4cm, 높이: 4cm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뚜껑과 몸체, 안쪽에 공간을 분리하는 속상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2023년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이 일본에서 환수한 유물이다. 이 상자는 침엽수 계통의 나무를 켜 판재로 만든 백골 위에 천을 바르고 그 위에 골회(骨灰)를 입혀 자개를 부착한 다음 여러 번 옻칠하여 마감하는 전형적인 고려 나전칠기 제작 방식인 목심저피법(木心紵皮法)으로 제작되었다. 표면에는 전체적으로 총 770개의 국화넝쿨무늬를 배치하였고, 부수적으로 마엽무늬(麻葉文), 귀갑무늬(龜甲文), 연주무늬(連珠文)를 사용하였다. 국화넝쿨무늬는 얇게 갈아낸 자개를 오려내어 붙인 줄음질 기법으로 시문되었으며, 넝쿨무늬의 줄기는 꼰 황동선을 사용하였다. 마엽무늬와 귀갑무늬는 자개를 가늘게 잘라내 끊어가며 무늬를 표현하는 끊음질 기법으로 시문되었다. 이러한 무늬의 표현은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고려의 나전칠기를 설명한 세밀가귀(細密可歸)’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크기는 세로 18.5cm, 가로 33.0cm, 전체 높이 19.4cm이며 일반적인 고려 나전칠기 경함(經函)보다는 크기가 작은 편이다. 고려의 나전상자는 국내외에 모두 20여 점만 현전하고 있는데, 상자 형태에 내부를 칸막음한 경우는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어 주목된다. 특히 몸체의 앞, , 옆면에는 경첩이나 금속제 못을 박았다가 빼서 패인 흔적이 남아 있어 큰 경함을 개조하여 작게 개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보존 상태가 뛰어나고 나전 고유의 빛깔이 잘 남아 있으며 문양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려 후기의 우수한 나전 기술이 응집되어 학술적예술적기술적인 가치를 갖추고 있다.

 

앙부일구[仰釜日晷]

유물번호 : 창덕12944

연대 : 조선시대

재질 : 금속

크기(cm) : 지름 24.3cm, 높이 10cm

앙부일구(仰釜日晷)1434(세종 16)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이다.

앙부라는 명칭은 그 형태가 하늘을 우러르는[] 가마솥[]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오목한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계절선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춰지는 것을 보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절기마다 태양에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로 시각선과 계절선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이며, 과학 문화유산으로서도 가치가 큰 유물이다. 또한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으로 그림을 그려서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선왕조 어보어책교명[朝鮮王朝 御寶御冊敎命]

유물번호 :

연대 :

재질 :

크기(cm) :

'조선왕조 어보어책교명은 조선이 건국한 1392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이후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1910년까지 의례에 사용된 인장과 문서이다. 어보는 국왕왕세자왕세제왕세손과 그 배우자를 해당 지위에 임명하는 책봉 때나 국왕왕비상왕(上王)왕대비대왕대비 등에게 존호(尊號), 시호(諡號), 묘호(廟號), 휘호(徽號) 등을 올릴 때 그 호칭을 새겨 제작한 의례용 인장이다. 어책은 어보와 함께 내려지는 것으로 의례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의미, 내용을 기록하였다. 신분과 재질에 따라 어보는 금보(金寶)옥보(玉寶)은인(銀印) 등으로, 어책은 옥책(玉冊)죽책(竹冊)금책(金冊) 등으로 구별하였다. 교명(敎命)은 왕비왕세자왕세자빈왕세제왕세제빈왕세손왕세손빈 등을 책봉할 때 내리는 훈유문서(訓諭文書)이다. ‘조선왕조 어보어책교명은 해당 인물 사후에 종묘의 신실(神室)에 봉안되어 전승되었다. 각 신실의 중앙에는 신주장(神主欌)을 두어 신주를 봉안하고, 양쪽으로 보장(寶欌)과 책장(冊欌)을 두어 어보어책교명 등을 봉안하였다.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

유물번호 : 고궁4000

연대 : 1531년경

재질 : 비단에 채색

크기(cm) : 가로: 72.4cm, 세로: 187.2cm, 화면 가로: 62.2cm, 화면 세로: 91.3cm

사가독서(賜暇讀書)한 이력이 있는 관료들의 모임을 기념하여 제작된 그림이다. 상단의 표제(表題)와 중단의 계회 장면을 묘사한 그림, 하단의 참석자 명단인 좌목(座目) 등 삼단으로 구성되었다. 상단에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라는 제목이 전서체로 쓰여 있고, 중단에는 가운데 솟은 응봉(鷹峰, 현재의 매봉산)을 중심으로 독서당이 위치했던 한강변의 두모포(豆毛浦, 현재의 성동구 옥수동) 일대가 묘사되어 있다. 응봉의 우측에는 남산, 인왕산과 북악산이, 응봉 좌측으로는 푸른 석청이 칠해진 삼각산과 도봉산 등이 나타나고 있다. 계회 장면은 독서당이 바라보이는 한강에서 관복 차림으로 뱃놀이를 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좌목에 참석자 12인의 호와 이름, 본관, 생년, 사가독서한 시기, 과거 급제 연도, 계회 당시의 품계와 관직 등이 기재되어 있다. 좌목의 관직을 근거로 제작시기(1531년경)를 추정할 수 있다.

 

국새 황제지보[皇帝之寶]

유물번호 : 고궁1990

연대 : 1897

재질 :

크기(cm) : 가로: 9.4cm, 세로: 9.2cm, 인신 높이: 3.3cm

 

대한제국 선포 때 제작한 인장이다. 국외로 반출되었다가 2014년에 환수되었다.

황제지보는 당시에 만들어진 고종황제의 국새 10과 중 1과로 황제가 직접 관료를 임명할 때 내려주는 임명장과 훈장서훈 사유를 적은 훈기(勳記)에 찍는 인장이다.

조선이 자주국가인 대한제국이며, 고종이 황제임을 선포하고 이후의 모든 국가 행정문서와 궁중의례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하였으며, 국새이자 왕실공예품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와 공예사적 가치를 지닌다.

 

국새 유서지보[諭書之寶]

유물번호 : 고궁1991

연대 : 1876

재질 : 금속 / 동합금제

크기(cm) : 가로: 10cm, 세로: 10cm, 인신 높이: 2.8cm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서인 유서(諭書)에 사용한 국새이다.

유서는 국왕이 군사권을 가진 관원에게 내렸던 문서로 각 지방에 부임하는 관찰사, 절도사, 방어사, 유수 등에게 왕과 해당관원만이 아는 밀부를 내려면서 함께 발급한 명령서이다. 이 외에도 국왕이 관찰사 및 어사(御使)가 올린 장계(狀啓)나 계본(啓本) 등을 참고하여 공적이 있는 지방관원을 포상할 경우에 발급하는 포상유서(褒賞諭書), 국왕이 왕족 및 관원과 일반백성을 훈유(訓諭)할 때 발급하는 훈유유서(訓諭諭書), 그리고 국왕이 지방에 있는 관원을 서울로 부르는 경우 등에도 유서를 발급하였다.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에 의하면 이 유서지보는 1876년에 궁중의 보()와 인() 11()를 개주ㆍ개조ㆍ수보할 때 제작되었다.

현전하는 유서지보는 한점도 없었으나 2014년에 미국에서 한점이 환수되어 돌아오면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서지보로는 이 국새가 유일하다.

 

국새 준명지보[濬明之寶]

유물번호 : 고궁1992

연대 : 1889

재질 :

크기(cm) : 가로: 8.8cm, 세로: 8.8cm, 인신 높이: 3cm

세자시강원관리(世子侍講院)를 임명하는 문서에 사용한 국새이다. 세자시강원은 춘방(春坊)'이라고도 하는데, 세자에게 유교경전과 역사를 강의하는데 목적이 있다.

세자시강원은 시기별로 그 이름이 변경되었는데, '왕세자시강원에서 '왕태자시강원'으로, 그리고 대한제국 선포 이후 '황태자시강원'으로 격상하였다. 이 준명지보는 고종이 세자시강원의 관격을 격상하면서 1889년에 제작한 국새로 시강원 관원에 대한 교지(敎旨)와 교서(敎書)에 사용되었다.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에 세부의 크기가 적혀있고, 승정원일기에도 고종의 명에 의한 제작배경과 보관위치, 사용된 예가 기록되어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 국외로 반출되었다가 2014년에 환수되었다.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유물번호 : 고궁2592

연대 : 1474

재질 : 종이

크기(cm) : 가로: 20cm, 세로: 32.2cm

 

1485(성종 16)에 이전 판본을 보각(補刻)하여 간행한 불교 지장신앙의 기본 경전이다.

이 책의 원 판본은 1474(성종 5) 5월 성종, 정희대왕대비(貞熹大王大妃)를 비롯하여 인수대비(仁粹大妃), 안순대비(安順大妃)가 주관하여 그 해 4월 창덕궁 구현전에서 훙거한 성종 초비인 공혜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내수사의 비용으로 광평대군 부인 신씨의 원당인 견성사(見性寺)에서 간행한 것이다. 원 판목 중 3장이 일실되어 1485년에 보각하여 다시 찍었다.

권상 권말에 성화이십일년 사월일보간 대화주비구 신환(成化二十一年 四月日補刊 大化主比丘 信環)’ 이라는 간기가 있어 보간 시기와 이를 주선한 시주자를 알 수 있다.

당대의 이름 있는 각수들이 새긴 내수사 출재의 왕실판본이므로 조선전기의 출판 인쇄와 왕실 관련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오자치 초상[吳自治 肖像]

유물번호 : 고궁2845

연대 : 1476

재질 : 비단

크기(cm) : 전체 세로: 238.2cm, 전체 가로: 127cm

 

오자치(吳自治, 1426~?)의 초상화이다.

오자치는 1467(세조 13)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그 공훈의 일환으로 1476(성종 7) 공신상이 제작되었다.

타원형의 양각이 수평으로 부착된 사모, 목 위에 곧게 선 직령, 손잡이 끝부분만이 몸체 양쪽으로 살짝 드러난 교의자의 표현, 공수한 팔 부분 사이로 드러난 흰 소매, 끈이 리본모양으로 의자에 묶인 점, 단령의 외곽선이 각이 지게 표현되고 단령 치맛자락의 트임 사이로 직령과 붉은 포가 드러난 점 등 전반적으로 다른 적개공신상인 <장말손 초상>, <손소 초상>과 동일한 면모를 보여준다.

양민공유사(襄敏公遺事)에는 1476년 왕이 충훈부(忠勳府)에 명하여 공신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초기의 초상화로 몇 점 남지않은 귀중한 작품으로 공신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앙부일구[仰釜日晷]

유물번호 : 창덕12943

연대 : 조선시대

재질 : 금속

크기(cm) : 높이: 19cm, 지름: 24.4cm, 경침길: 9.1cm, 태길: 24.5cm

 

앙부일구(仰釜日晷)1434(세종 16)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이다.

앙부라는 명칭은 그 형태가 하늘을 우러르는[] 가마솥[]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오목한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계절선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춰지는 것을 보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절기마다 태양에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로 시각선과 계절선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이며, 과학 문화문화유산으로서도 가치가 큰 유물이다. 또한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으로 그림을 그려서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조어진1[英祖御眞]

유물번호 :창덕6363

연대 : 1900(고종 37)

재질 : 비단에 채색

크기(cm) :세로: 110.5, 가로: 61.8

 

작가: 채용신(蔡龍臣, 1850~1941), 조석진(趙錫晉, 1853~1920)

제작년도: 1900

유형: 족자

1900(광무 4) 역대 임금의 어진을 모셔 두었던 경운궁(慶運宮)의 선원전(璿源殿)에 화재가 발생하여 잃게 된 일곱 분 임금의 어진을 대대적으로 모사할 때 제작한 영조 어진이다. 당시 육상궁(毓祥宮) 냉천정(冷泉亭)에 모셨던 1744(영조 20)에 그린 어진을 본떠 그린 것이다. 주관화사는 채용신(蔡龍臣, 1850~1941)과 조석진(趙錫晉, 1853~1920)이 맡았다. 익선관을 쓰고 가슴과 두 어깨에 오조룡(五爪龍)을 금실로 수놓은 홍룡포(紅龍袍)를 착용한 반신상이다. 표제는 고종황제가 직접 쓴 것이다.

 

조선왕조의궤 상호도감의궤[朝鮮王朝儀軌 上號都監儀軌]

유물번호 :고궁2746

연대 : 1866

재질 : 종이에 먹과 채색

크기(cm) : 가로: 32.4cm, 세로: 45.3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된 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상호도감의궤는 1866(고종 3)에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이 끝나자 이를 경축하기 위해 익종(翼宗), 헌종(憲宗), 철종(哲宗) 및 이들의 비인 신정왕후(神貞王后), 효현왕후(孝顯王后), 효정왕후(孝定王后), 철인왕후(哲仁王后)에게 존호(尊號)를 올린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의식에 사용된 물품의 그림과 재료 등의 도설자료와 채색 반차도(班次圖), 옥책(玉冊)과 금보(金寶)의 제작과정과 봉안절차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의궤 황태자가례도감의궤[朝鮮王朝儀軌 皇太子嘉禮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705

연대 : 1906

재질 : 종이에 먹과 채색

크기(cm) : 가로: 32.5cm, 세로: 45.4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황태자가례도감의궤는 1906년 순종(純宗, 1874~1926)과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1894~1966)의 혼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의궤로 소요재정, 투입 인원, 도식, 반차도 등이 기록되어 있다.

대한제국기에 작성된 유일한 가례도감의궤로 황제국에 걸맞게 의례에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조선 왕실의 전통과 전례가 이어지는 측면을 보여준다.

 

조선왕조의궤 보인소의궤[朝鮮王朝儀軌 寶印所儀軌]

유물번호 : 고궁2719

연대 : 1878

재질 : 종이에 먹

크기(cm) :가로: 31.9cm, 세로: 45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보인소의궤는 경복궁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각이 소실되고 왕실의 각종 보인(寶印)들이 사라지거나 파손된 후 새롭게 보인을 제작ㆍ보수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도설(圖說)부분에 각 보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외형, 인면(印面)을 채색 그림으로 수록하고 보인을 봉과하는 데 필요한 보통(寶筒), 보록(寶盝), 호갑(護匣) 등의 재질, 규격, 제작 방법 등을 기록하여, 보인과 그 부속물품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조선왕조의궤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朝鮮王朝儀軌 明成皇后國葬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711

연대 : 1898

재질 : 종이에 먹과 채색

크기(cm) : 세로: 49.7, 가로: 33.2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1895820(음력)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당하자(乙未事變), 조정에서는 왕비의 국장을 거행하기 위해 삼도감(三都監)을 설치하였다. 본 의궤는 1895년 왕비의 승하일로부터 18971028일 반우(返虞)하기까지 당시 국장도감(國葬都監)에서 국장(國葬)을 준비하고 거행한 내용을 기록한 의궤이다.

 

조선왕조의궤 철인왕후예릉산릉도감의궤[朝鮮王朝儀軌 哲仁王后睿陵山陵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698

연대 : 1878

재질 : 종이에 먹과 채색

크기(cm) : 가로: 31.3cm, 세로: 44.5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철인왕후예릉산릉도감의궤는 철종비(哲宗妃)인 철인왕후(哲仁王后(1837~1878)의 능인 예릉의 조성 과정을 기록한 의궤로 산릉도감(山陵都監)에서 간행하였다. 의궤의 상편에서는 1878(고종 15) 512일 철인왕후가 승하하고 922일 도감의 모든 업무를 마칠 때까지의 진행 과정과 각종 공문서 등을 기록하고 있으며, 하편에서는 산릉도감 예하 각 기구의 구성과 업무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또한 능상각(陵上閣정자각(丁字閣재실(齋室) 등 왕릉의 건축물 도설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조선왕조실록 신정왕후수릉산릉도감의궤[神貞王后綏陵山陵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707

연대 : 1892

재질 : 종이에 먹과 채색

크기(cm) : 가로 31cm, 세로 44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신정왕후수릉산릉도감의궤는 익종비(翼宗妃)인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의 능인 수릉의 조성 과정을 기록한 의궤로 산릉도감(山陵都監)에서 간행하였다. 1890(고종 27) 513일 산릉 공사를 시작해 95일 안릉전(安陵奠)을 행할 때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책으로 2책으로 구성되었다.

 

경운궁 중건 내용을 기록한 의궤[慶運宮重建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738

연대 : 1900년대

재질 : 종이에 먹

크기(cm) : 가로 31.8cm, 세로 45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경운궁중건도감의궤는 1904(광무 8)에 일어난 화재로 덕수궁[경운궁(慶運宮)]의 주요 전각이 소실되어 중건도감(重建都監)을 설치하고 복구공사를 진행한 기록이다.

의궤 내용 가운데 모서리 부분을 활모양으로 마감한 현판을 궁양현판(弓樣懸板)’, 테두리가 없는 널빤지 형태의 현판을 편현판(片懸板)’으로 언급하고 있어 주목된다. 현판을 제작할 때 소요된 자재와 안료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궁양현판과 편현판을 제작하기 위해 피나무[단판(椴板)]를 사용하였음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의궤 창경궁영건도감의궤[朝鮮王朝儀軌 昌慶宮營建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740

연대 : 1800년대

재질 : 종이에 먹

크기(cm) : 가로 32cm, 세로 45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창경궁영건도감의궤는 1830(순조 30) 8월 창경궁(昌慶宮) 환경전(歡慶殿)에서 발생한 화재로 많은 전각이 소실된 후 경춘전(景春殿), 양화당(養和堂) 등의 전각을 중건한 내용을 기록한 의궤이다.

토공사, 석공사, 목공사와 같이 각종 공정에 필요한 원료의 종류와 물량이 기술되어 있다. 특히 실입(實入)부분에 중건 공사에 소요된 자재와 원료, 그리고, 현판 제작에 들어간 안료와 함께 단청을 가칠(假漆)하는데 소요된 항목를 기록하고 있어서 당시 전통안료와 재료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왕조의궤 창덕궁만수전수리도감의궤[朝鮮王朝儀軌 昌德宮萬修殿修理都監儀軌]

유물번호 : 고궁2013

연대 : 1656

재질 : 종이에 먹

크기(cm) : 가로 34.5cm, 세로 44.4cm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태조 때 최초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제작되었으나 조선전기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 중 80133책이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2011.12.6.) 후 보물(2016.05.03.)로 일괄 지정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창덕궁만수전수리도감의궤는 1655(효종 6)부터 1656(효종 7)까지 2년에 걸쳐 창덕궁(昌德宮) 내 대비(大妃)의 처소인 만수전(萬壽殿)을 수리한 내용을 기록한 의궤이다.

각양석물실입질(各樣石物實入秩)에서 강화박석(江華薄石) 7,719, 해주박석(海州薄石) 1,200립이라는 기록을 통해 만수전 공사를 위한 석재는 강화도 등지에서 채석해 왔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대비전(大妃殿) 조성에 관한 유일한 의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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