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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및 종묘

동해건설산업 2025. 10. 23. 12:39

숭례문 , 경희궁 소개·역사

 

숭례문(崇禮門)1398(태조 7)에 완성한 한양도성의 남대문이다.

 

숭례문은 1392년 조선 건국 후 1396(태조 5)에 공사를 시작하여, 1398(태조 7)에 완성하였다. 이후 1448(세종 30), 1479(성종 10), 1868(고종 5) 등 여러 차례에 수리를 거쳤다. ‘숭례의 이름은 유교의 덕목인 인(), (), (), ()에서 를 따와 이름을 지었고, 현판은 태종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숭례문은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虹霓門)을 두고, 그 위에 정면 5, 측면 2칸으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의 형태는 우진각 지붕이고 공포의 양식은 다포(多包)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매일 밤 인정(10시 무렵)에 문을 닫았다가 다음 날 아침 파루(4시 무렵)에 문을 열었는데, 이때 문루에 종을 달아 그 시간을 알렸다. 또 장마나 가뭄이 심할 때는 왕이 직접 기청제와 기우제를 지내는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행했던 곳이다. 그러나 대한제국 시대에 좌우 성곽이 철거되었으며, 한국전쟁 때 훼손되어 1960년대에 보수하였다. 2008210일 방화 사건으로 크게 훼손되어 2013년에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역사

연도
내용
1398년(태조 7)
숭례문 건립
1907년(융희 1)
일본 황태자의 방한 이유로 성곽을 헐음
1962년
국보로 지정
2008년
방화 사건으로 소실
2013년
복원공사 완료

경희궁

경희궁(慶熙宮)은 조선 15대 광해군 대에 이궁(離宮)으로 창건한 궁으로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다. 원래 이곳은 16대 인조의 아버지 추존 원종(정원군)이 살던 사저였는데, 경덕궁이 지어지면서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 불렸다. 1760(영조 36)에는 원종의 시호(諡號)와 음이 같다 하여 궁의 이름을 경희궁으로 바꾸었다.

주요 전각으로는 정문인 흥화문(興化門), 정전인 숭정전(崇政殿), 편전인 자정전(資政殿), 그 밖에 생활공간인 융복전(隆福殿), 회상전(會祥殿) 등이 있었다. 이곳은 인조 대부터 철종 대까지 많은 왕과 왕비가 생활하였는데, 특히 경종, 정조, 헌종이 숭정문(崇政門)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1865(고종 2) 경복궁 중건이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전각들이 경복궁 복원에 사용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학교가 지어지면서 일부 남아있던 전각들이 철거되었다. 이후 1987년부터 서울시에서 경희궁 복원사업을 진행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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