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5대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경운궁) 그리고 경희궁(경덕궁)이다.
![]() |
1392년 조선 건국 후 태조는 3년 뒤에 수도를 개경(지금의 북한 개성)에서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옮기기 위해 종묘와 사직, 그리고 궁궐을 지었다. 제일 처음 지어진 경복궁(景福宮)은 백악산(지금의 북악산) 아래로 넓은 지형에 건물을 배치한 법궁(法宮)으로, 태조는 이곳에서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1398년 정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수도를 개경으로 옮겼다가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1405년(태종 5) 수도를 다시 한양으로 옮겼다. 이때 태종은 경복궁이 아닌 새로운 이궁(離宮, 법궁 외에 별도로 지은 궁궐)을 지었는데 1405년(태종 5)에 완성한 창덕궁(昌德宮)이다. 창덕궁은 정치의 공간과 생활의 공간을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룬 조선의 대표적인 궁궐로 조선의 역대 왕들 대부분이 창덕궁에서 생활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1418년 세종이 왕위에 오른 후 상왕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쪽에 수강궁(壽康宮)을 지었다. 이후 1483년(성종 14)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수강궁을 크게 확장하고 궁의 이름을 창경궁(昌慶宮)이라 하였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하나의 영역을 이루었으며, 창덕궁이 정치의 공간이었다면 창경궁은 생활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소실되었다. 이듬해에 선조는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사저를 임시 궁궐로 사용하면서 이곳을 정릉동 행궁(貞陵洞 行宮)이라 불렀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 이곳을 정식 궁궐로 삼아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을 정했다. 한편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궁궐 중에서 가장 먼저 중건된 궁은 창덕궁이다. 경복궁이 중건되지 못하고 빈터로 남아 있는 동안 창덕궁이 실질적인 법궁이 되었고 옥류천, 규장각, 주합루, 연경당, 낙선재 등의 건물이 조성되어 창덕궁의 영역은 점차 넓어지게 되었다. 창덕궁이 중건된 이후 광해군은 현 사직단 부근에 인경궁(仁慶宮)을, 그리고 서대문 근처에 경덕궁(慶德宮)을 새로 지었다. 인경궁은 1623년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인경궁을 헐어 창덕궁과 창경궁을 보수했으므로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경덕궁은 현재의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궁궐로 영조대에 경희궁(慶熙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곳은 서궐(西闕)이라 불린 규모가 큰 궁궐로, 주요 전각으로는 흥화문(興化門), 숭정전(崇政殿), 자정전(資政殿), 융복전(隆福殿), 회상전(會祥殿) 등이 있었다. 경희궁은 고종 초반 경복궁 중건 때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철거되어 현재는 일부 건물만 복원되어 남아 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지 270여년이 지난 1867년(고종 4) 경복궁이 중건되었다. 이로써 경복궁이 다시 법궁의 지위를 회복하였다. 고종은 경복궁과 창덕궁을 오가며 생활하였고, 이때 건청궁, 태원전, 집옥재 등이 조성되었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경운궁을 사용하였다. 이때 석조전, 정관헌, 돈덕전, 중명전 등 서양식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대한제국의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어 조선과 대한제국의 건물이 조화를 이루었다. 경운궁은 1907년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자 덕수궁(德壽宮)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순종이 황위에 오른 후부터 궁궐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시작하였다. 1907년부터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였고, 경술국치 후 1911년에는 궁의 이름을 격하시켜 ‘창경원’이라 부르게 하였다. 또 1926년에는 경복궁 흥례문 영역을 철거하여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었고, 1930년대에는 덕수궁 일부 전각을 헐어 공원으로 조성하는 등 크게 훼손시켰다. 광복 이후부터 훼손된 궁궐의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1983년에 창경원은 다시 원래 이름인 ‘창경궁’을 찾으며 복원공사를 진행하였고, 1995년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여 경복궁 흥례문 영역을 복원하였다. 그 밖에 창덕궁, 덕수궁, 경복궁 등도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이 되었다. |
![]() |
|
![]() |
|
![]() |
|
![]() |
궁궐의 연표
|
연대
|
왕대별
|
역사적 사실
|
|
1392년
|
태조 1
|
조선개국, 태조의 4대 조상을 왕으로 추존함
|
|
1394년
|
태조 3
|
한양 천도 결정
경복궁 : 궁궐 조성 시작 종묘 : 종묘 조성 시작 |
|
1395년
|
태조 4
|
경복궁 : 궁궐 중심전각 완공(390여 칸)
종묘 : 종묘 완공 / 정전, 신실 7칸 좌우 익실 각각 2칸 규모 / 정전에 추존 4대 신주 봉안 |
|
1398년
|
태조 7
|
경복궁 : 궁궐 담장(궁장) 완공
|
|
1405년
|
태종 5
|
창덕궁 : 궁궐 조성 시작
|
|
1406년
|
태종 6
|
창덕궁 : 후원 조성
|
|
1411년
|
태종 11
|
창덕궁 : 금천교 건립
|
|
1412년
|
태종 12
|
경복궁 : 경회루 중건
창덕궁 : 돈화문 건립 |
|
1418년
|
세종 즉위
|
창경궁 : 상왕전(태종)으로 수강궁 창건
|
|
1421년
|
세종 3
|
종묘 : 영녕전 건립. 신실 6칸규모
|
|
1427년
|
세종 9
|
경복궁 : 동궁(자선당) 건립
|
|
1438년
|
세종 20
|
경복궁 : 흠경각 건립 / 선원전 건립
|
|
1443년
|
세종 25
|
경복궁 : 교태전 건립
|
|
1462년
|
세조8
|
창덕궁 : 후원 본격 확장
|
|
1483년
|
성종 14
|
창경궁 : 수강궁 터에 창경궁 창건
|
|
1494년
|
연산 즉위
|
창덕궁 : 후원 꾸밈
|
|
1546년
|
명종 1
|
종묘 : 정전 11칸으로 증축
|
|
1554년
|
명종 9
|
경복궁 : 화재로 소실된 강녕전, 사정전, 흠경각 복구
|
|
1592년
|
선조 25
|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소실
|
|
1593년
|
선조 26
|
덕수궁 : 월산대군의 저택을 임시 궁궐로 삼고, '정릉동 행궁'이라 부름
|
|
1608년
|
선조 41
광해 즉위 |
덕수궁 : 선조 석어당(추정)에서 승하 / 광해군 즉조당(추정)에서 즉위
종묘 : 정전 11칸, 영녕전 10칸 규모로 증건 |
|
1610년
|
광해 2
|
창덕궁 : 재건하여 법궁으로 삼음
|
|
1611년
|
광해 3
|
광해군 덕수궁(정릉동 행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김 /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이라 칭함 / 광해군 경운궁으로 다시 옮김
|
|
1615년
|
광해 7
|
광해군 창덕궁으로 다시 옮김
|
|
1616년
|
광해 8
|
창경궁 : 중건
|
|
1618년
|
광해 10
|
덕수궁 : 인목대비를 폐위하여 석어당에 유폐
|
|
1623년
|
광해 15
인조 즉위 |
창덕궁 : 인조반정으로 전각 대부분 소실
창경궁 : 인조반정으로 동궁인 저승전과 내전 일대 소실 덕수궁 : 인조 즉조당(추정)에서 즉위 / 창덕궁으로 옮김 |
|
1624년
|
인조 2
|
창경궁 : 이괄의 난으로 통명전, 양화당 등 소실
|
|
1633년
|
인조 11
|
창경궁 : 통명전, 양화당 등 중건
|
|
1636년
|
인조 14
|
창덕궁 : 후원 옥류천에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건립
|
|
1647년
|
인조 25
|
창덕궁 : 선정전, 대조전, 희정당 등 소실된 건물 중건
|
|
1667년
|
현종 8
|
종묘 : 영녕전 12칸으로 증축
|
|
1704년
|
숙종 30
|
창덕궁 : 후원에 대보단 조성
|
|
1726년
|
영조 2
|
종묘 : 정전 15칸으로 증축
|
|
1776년
|
정조 즉위
|
창덕궁 : 후원에 규장각 설치
|
|
1777년
|
정조 1
|
창경궁 : 자경전 건립
|
|
1790년
|
정조 14
|
창경궁 : 통명전 소실
|
|
1803년
|
순조 3
|
창덕궁 : 인정전 소실
|
|
1804년
|
순조 4
|
창덕궁 : 인정전 재건
|
|
1830년
|
순조 30
|
창경궁 : 환경전에서 발생한 화재로 내전 일대 소실
|
|
1833년
|
순조 33
|
창덕궁 : 대조전, 희정당 등 소실
|
|
1834년
|
순조 34
|
창덕궁 : 대조전, 희정당 등 재건
창경궁 : 통명전, 환경전 등 소실된 전각 재건 |
|
1836년
|
헌종 2
|
종묘 : 정전 19칸으로 증축 / 영녕전 16칸으로 증축
|
|
1857년
|
철종 8
|
창경궁 : 선인문, 위장소, 주자소 등 60여 칸 소실
|
|
1865년
|
고종 2
|
경복궁 : 중건 시작
|
|
1867년
|
고종 4
|
경복궁 : 중건 완공
|
|
1873년
|
고종 10
|
경복궁 : 건청궁 창건
|
|
1876년
|
고종 13
|
경복궁 : 교태전, 자경전 등 내전 830여 칸이 화재로 소실
덕수궁 : 강화도 조약 체결, 문호 개방 시작 |
|
1877년
|
고종 14
|
창경궁 : 수리
|
|
1882년
|
고종 19
|
창덕궁 : 임오군란, 성난 군중 창덕궁에 침입
|
|
1884년
|
고종 21
|
창덕궁 : 갑신정변, 개화파가 고종을 관물헌에 모심
|
|
1888년
|
고종 25
|
경복궁 : 소실된 전각 중건
|
|
1895년
|
고종 32
|
경복궁 : 건청궁에서 명성황후 시해사건 발생
|
|
1896년
|
고종 33
|
고종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
|
|
1897년
|
고종 34
고종 광무 1 |
고종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돌아옴
덕수궁 : 대한제국 선포, 고종 황제 즉위 |
|
1904년
|
고종 광무 8
|
덕수궁 : 대화재로 중화전, 석어당, 즉조당, 함녕전 등 전각 소실
|
|
1905년
|
고종 광무 9
|
덕수궁 : 중명전에서 을사늑약 체결
|
|
1906년
|
고종 광무 10
|
덕수궁 : 대안문을 수리하고 대한문으로 개칭
|
|
1907년
|
순종 융희 1
|
덕수궁 : 순종 창덕궁으로 옮김 /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부르기 시작
|
|
1909년
|
순종 융희 3
|
창경궁 : 동ㆍ식물원 조성으로 궁궐 훼손
|
|
1910년
|
순종 융희 4
|
창덕궁 : 흥복헌에서 한일병합조약 체결
덕수궁 : 석조전 완공 |
|
1911년
|
|
창경궁 : 창경원으로 격하
|
|
1915년
|
|
경복궁 :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로 전각 다수 철거
|
|
1917년
|
|
창덕궁 : 대화재로 대조전 소실
|
|
1919년
|
|
덕수궁 : 고종, 함녕전에서 승하
|
|
1920년
|
|
창덕궁 : 경복궁의 일부 건물 헐어 대조전, 희정당 등 재건
|
|
1926년
|
|
경복궁 : 조선총독부 청사 완공
창덕궁 : 대조전에서 순종 승하 |
|
1927년
|
|
경복궁 : 광화문 이건(移建)
|
|
1938년
|
|
덕수궁 : 석조전 서관 완공 / 이왕가미술관으로 개관
|
|
1946년
|
|
덕수궁 : 석조전에서 미소공동위원회 열림
|
|
1951년
|
|
경복궁 : 한국전쟁으로 광화문 소실
|
|
1968년
|
|
경복궁 : 광화문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복원
|
|
1973년
|
|
종묘 : 영녕전 16실에 의민황태자(영왕) 신주 봉안
|
|
1983년
|
|
창경궁 : 창경궁으로 환원 / 창경궁 복원 공사
|
|
1989년
|
|
창덕궁 : 낙선재에서 이방자 여사, 덕혜옹주 별세
|
|
1990~1999년
|
|
창덕궁 : 인정전 내행각ㆍ외행각 정비 및 복원
|
|
1995년
|
|
경복궁 : 강녕전, 교태전, 흠경각, 함원전 복원
구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시작 종묘 :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
|
1996년
|
|
경복궁 : 구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완료
|
|
1997
|
|
창덕궁 :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
|
1999년
|
|
경복궁 : 동궁(자선당, 비현각) 복원
|
|
2001년
|
|
경복궁 : 흥례문, 영제교 복원
종묘 :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
|
2005년
|
|
경복궁 : 태원전 복원
|
|
2006년
|
|
경복궁 : 건청궁 복원
|
|
2007년
|
|
덕수궁 : 복원 시작
|
|
2010년
|
|
경복궁 : 광화문 복원
|
|
2019년
|
|
경복궁 : 흥복전 복원
덕수궁 : 광명문 이전 복원 |
궁궐의 자리

풍수지리를 반영한 궁궐터
조선을 세운 태조는 새 나라, 새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1392년 새 도읍지로 한양(서울의 옛지명)을 선택했다. 한양을 도읍지로 선택함은 당시의 풍수지리 사상에 따른 것으로 그에 따른 도시계획 또한 철저히 진행되었다. 한양의 지형과 지세에 맞게 도시가 계획된 것이다. 법궁(法宮)인 경복궁은 현무(북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 거북과 뱀이 뭉친 모양)에 해당하는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백호(서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 범)인 인왕산, 주작(남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 붉은 봉황)인 목멱산(남산), 청룡(동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 용)인 낙산, 이 네 개의 산에 둘러싸인 곳에 터를 잡았다.
좌묘우사(左廟右社)
동아시아에서 예로부터 도시를 형성하는 기본 원칙으로 좌측에는 국가의 제례를 관장하는 종묘를 그리고 우측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단을 두는 것을 원칙으로 되어왔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서울) 역시 법궁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경복궁의 좌측에는 종묘를 건축했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셔놓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동지 후 납일(臘日)이 되면 매년 다섯 차례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었다. 경복궁의 우측에 위치한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다.
조선 제일의 궁궐 “경복궁”
경복궁은 조선 제일의 궁궐이다. 태조가 조선을 세우고 가장 먼저 창건한 궁궐이 바로 경복궁이다. 조선시대 제일의 궁궐인 경복궁은 서울의 주산인 백악에 안겨있다. 경복궁의 서쪽에는 인왕산이 솟아있다.
동궐
경복궁을 중심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東闕)이라고 한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서로 다른 별개의 궁이지만 동쪽에 위치하는 궁이라 하여 동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서울의 동쪽인 응봉 자락에 위치한다. 창덕궁은 응봉에서 흘러내리는 산자락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동편에는 창경궁이 자리하고 있다.
서궐
서울의 5대 궁궐 중 서쪽에 위치한 궁궐이 경희궁이다. 경희궁은 또 다른 궁궐인 덕수궁(경운궁)과 함께 서울의 우백호인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다.
현재의 경희궁은 일부 전각만 복원되었다. 서울의 궁궐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궁궐이 바로 덕수궁이다. 덕수궁의 옛 이름은 경운궁인데, 다른 궁과는 달리 시내에 위치한 것 같지만 실제는 낮은 산자락에 위치한 궁이다. 산자락이 너무 낮고 현재는 건물과 길로 눌리고 끊어져 있어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 |
![]() |
![]() |
![]() |
궁궐의 짜임새
왕실의 거처이자 행정의 최고 중앙 관청이었던 궁궐. 많은 건물들이 기능에 따라 각기 일정한 구역에 모여 짜임새 있는 공간을 구성한다.
궁궐 공간의 구조와 기능
![]() |
1. 외전
외전은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외전 중 핵심이 되는 공간이 바로 정전이다. 정전은 궁궐에서 외형상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있는 공간으로 조정의 조회와 사신의 응대, 각종 잔치를 벌이는 국가의 공식적인 의식을 거행하는 공간이다.
|
![]() |
![]() |
2. 내전
궁의 중앙에 위치한 내전은 왕과 왕비의 공식 활동과 일상적인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위치만 궁의 중앙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궁의 핵심을 이루는 기능도 하였다.
|
![]() |
|
![]() |
![]() |
3. 동궁
동궁은 왕위의 계승자인 세자의 활동공간이다. 다음 왕위를 이을 세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내전의 동편에 그 처소를 마련했는데 그 이유는 세자를 ‘떠오르는 해’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
4. 후원
궁궐의 북쪽 산자락에 위치한 후원은 왕을 비롯한 궁궐 사람들의 휴식공간이다. 후원은 산골짜기, 연못, 아담한 정자 등이 주로 배치되어 있는데 후원에서는 과거 시험을 치르기도 하고, 군사훈련을 하기도 했으며, 종친 모임과 같은 대규모 모임을 열기도 하였다. |
![]() |
5. 궐내각사
궐내각사는 궁궐 안에서 활동하는 여러 관리들이 업무를 보던 공간으로, 관서들을 이르는 말이다. 궐내각사에는 정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 경비와 호위 등 군사 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 왕실 시중과 궁궐의 시설 관리를 맡는 관리기구 등이 있다. 주요 기구로는 정승, 판서 등 고위 관리들의 회의 공간인 빈청, 이조와 병조의 관원들이 들어와 인사 업무를 처리하는 정청, 사헌부와 사간원의 언관들이 언론 활동을 논의하고 준비하는 대청,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승지들의 관서인 승정원, 학문을 도야하여 왕의 주문에 대응하고 왕과 함께 경전과 역사책을 토론하는 홍문관, 외교문서를 짓는 예문관, 실록 편찬 등 역사기록을 담당하는 춘추관 등이 있다. |
궁궐의 건축
궁궐건축의 특징은 뒤로는 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 궁궐을 바라보며 왼쪽에는 사직단, 오른쪽에는 종묘가 있는 좌묘우사를 지켰으며, 왕실의 존엄성과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서 대규모로 화려하게 건축되었다.
1. 건물의 여러 전각
궁궐에는 여러 건물이 있는데 크기와 격에 따라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루(樓), 정(亭)’으로 구분한다. ‘전당합각재헌루정’은 품격이 높은 것에서 낮은 것으로 가는 순서이며 건물들의 신분과 위계 질서라고 할 수 있다.
궁궐의 건축
궁궐건축의 특징은 뒤로는 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 궁궐을 바라보며 왼쪽에는 사직단, 오른쪽에는 종묘가 있는 좌묘우사를 지켰으며, 왕실의 존엄성과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서 대규모로 화려하게 건축되었다.
1. 건물의 여러 전각
궁궐에는 여러 건물이 있는데 크기와 격에 따라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루(樓), 정(亭)’으로 구분한다. ‘전당합각재헌루정’은 품격이 높은 것에서 낮은 것으로 가는 순서이며 건물들의 신분과 위계 질서라고 할 수 있다.
|
건물명
|
사진
|
설명
|
|
전(殿)
|
![]() |
가장 격식이 높고 규모도 큰 여러 건물들 중 으뜸인 건물이다. 왕, 왕비 또는 상왕, 왕대비 등 궐 안의 웃어른이 사용하는 건물에 붙는다. 예)경복궁 근정전 / 창덕궁 대조전 / 창경궁 통명전 / 덕수궁 함녕전 등
◁ 경복궁 근정전 |
|
당(堂)
|
![]() |
전(殿)에 비해 규모는 비슷하나 격은 한 단계 낮은 건물이다. 전은 공식적 성격을 띈다면 당은 좀 더 사적인 건물에 쓰이며 전에 딸린 부속건물이거나 부속공간의 중심건물을 부르는 말이다. 예)경복궁 자선당 / 창덕궁 희정당 / 창경궁 양화당 등
◁ 창덕궁 희정당 |
|
합(閤)/각(閣)
|
![]() |
대부분 전(殿)과 당(堂)을 부속하거나 양옆에 위치하는 건물이다. 예)경복궁 곤녕합 / 창덕궁 규장각 등
◁ 창덕궁 규장각 |
|
재(齋)/헌(軒)
|
![]() |
왕실가족이나 궁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물에 붙여지는데 재(齋)는 주로 일상적 주거용으로, 헌(軒)은 공무적 기능을 가진경우가 많다. 예)경복궁 집옥재 / 창덕궁 낙선재 /창경궁 영춘헌 / 덕수궁 정관헌 등
◁ 창덕궁 낙선재 |
|
루(樓)
|
![]() |
마루를 지면으로부터 높이 띄워 습기를 피하고 통풍이 잘되도록 만든 건물로 주로 휴식이나 연회를 하기위한 장소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예)경복궁 경회루 / 창덕궁 주합루 등
◁ 경복궁 경회루 |
|
정(亭)
|
![]() |
정자를 의미하며 휴식이나 연회공간으로 활용된다. 루(樓)와 사용의 목적은 비슷하나 정(亭)은 규모가 작고 개인적인데 비해 루(樓)는 건물이 크고 공공성을 가지며 사적인 행사보다는 공적인 행사를 위한 건물이다. 예)경복궁 향원정 / 창덕궁 애련정, 청의정 등
◁ 경복궁 향원정 |
2. 다포집
눈여겨 볼 건축양식으로 공포를 기둥위와 기둥사이에도 꾸며 놓은 집. 갖은포집
![]() |
![]() |
![]() |
3. 건물의 주요 부분 명칭

궁궐의 지붕
한옥건물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지붕이다 궁궐에는 대부분 기와지붕이지만 간혹 초가지붕도 있다. 지붕은 그 모양에 따라 "팔작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모임지붕"으로 나뉜다.

|
지붕 종류
|
사진
|
설명
|
|
팔작지붕
|
![]() |
한식(韓式) 가옥의 지붕 구조의 하나로, 합각(合閣)지붕, 팔작집이라고도 한다. 지붕 위까지 박공(牔栱)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루고 처마끝은 우진각지붕과 같다. 맞배지붕과 함께 한식 가옥에 가장 많이 쓰는 지붕의 형태이다.
◁ 경복궁 근정전 |
|
맞배지붕
|
![]() |
지붕의 완각이 잘려진 가장 간단한 지붕형식으로, 측면 가구(架構)가 노출되므로 측면관(側面觀)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형태이다.
◁ 종묘 정전 |
|
우진각지붕
|
![]() |
옆지붕면이 삼각형 모양을 하여, 그 꼭지점이 용마루 끝에 닿은 형태로서 내림마루와 추녀마루가 하나의 선을 이루어 용마루 끝에서 추녀로 비스듬히 이어진다.
◁ 경복궁 광화문 |
|
모임지붕
|
![]() |
주로 정자건축에 사용되는데, 평면의 형태에 따라 사모, 육모, 팔모, 원형지붕으로 나뉠 수 있다. 창덕궁 농수정은 사모지붕, 경복궁 향원정은 육모지붕 형태이다.
◁ 경복궁 향원정 |
궁궐의 나무
한옥건물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지붕이다 궁궐에는 대부분 기와지붕이지만 간혹 초가지붕도 있다. 지붕은 그 모양에 따라 "팔작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모임지붕"으로 나뉜다.
![]() |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상나무·노송나무로도 불린다. 이 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도 쓰이며 정원수·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창덕궁의 향나무는 나이가 약 7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m, 뿌리부분 둘레 5.9m이다. 가지는 동서남북으로 1개씩 뻗어나갔는데 남쪽 가지는 잘라졌고, 북쪽 가지는 죽었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한 기형으로 자랐다. 나무의 모양은 마치 용이 하늘을 오르는 모습처럼 생겼다. 창덕궁은 조선 태종 4년(1404)에 왕실의 이궁(離宮)으로 지었는데, 창덕궁을 지은 다음 어느 정도 자란 커다란 나무를 심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나무나이를 700년이라 추정한 것이다. 창덕궁의 향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 |
창덕궁 회화나무군은 창덕궁 돈화문을 들어서자마자 관람로 양옆에 나란히 자라고 있는 회화나무 8그루로 나무 높이는 15.0~16.0m, 가슴높이 줄기둘레은 90~178㎝에 이르는 노거수이다. 창덕궁 돈화문 주변은 조정의 관료들이 집무하는 관청인 궐내각사가 위치한 곳이다.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재상들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궐내각사가 위치한 궁궐 입구에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창덕궁 회화나무는 1820년대 중반에 제작된 「동궐도」에도 노거수로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수령은 300~400여년으로 추정된다. |
![]() |
다래나무는 덩굴나무로 중국, 일본과 우리나라의 깊은 산속 토질이 좋은 곳에서 잘 자란다. 잎은 타원형이며 봄에 돋아 가을에 떨어지고 꽃은 흰색으로 5월에 3∼10송이가 피며, 열매는 10월에 황록색으로 익는다. 창덕궁의 다래나무는 나이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9m, 가슴높이의 둘레 15~18㎝이며, 6개 정도의 굵은 줄기가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있다. 이 나무는 특별히 타고 올라갈 지지대 없이 이리저리 엉키면서 자라는 모습이 매우 독특하고 또 줄기의 껍질이 얇게 벗겨져 일어나는 점도 특이하다. 창덕궁의 다래나무는 우리나라의 다래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크다. 또한 궁궐 속에서 자라온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 |
창덕궁 뽕나무는 나무높이 12.0m,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239.5㎝로 뽕나무로서는 보기 드문 노거수일 뿐만 아니라 창덕궁 내 뽕나무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수형이 단정하고 아름답다. 예로부터 조선은 농본사회로 ‘농상’이라는 말에서 전하듯 농사와 함께 뽕나무를 키워 누에를 쳐 비단을 짜는 일은 조선시대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였다. 『성종실록』에 왕이 승정원에 양잠의 중요성을 말하며 후원에 뽕나무를 식재하도록 하고,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고 인간에게 처음으로 누에치는 법을 가르쳤다는 양잠의 신 서릉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친잠례”를 거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창덕궁 뽕나무는 친잠례 거행 등 궁궐 역사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목으로 우리가 보호 관리하여야 할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큰 소중한 문화재이다. |
궁궐에 있던 나무들은 비록 일제 강점기에 그 원형을 대부분 잃었으나. 다행히 우리 손으로 복원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많은 나무를 심었다. 남해안에서 자라는 몇 수종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의 숲을 대표할 수 있는 나무의 대부분을 궁궐에서 만날 수 있다.
![]() |
동궐도는 법궁인 경복궁 동쪽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것으로 오른쪽 위에서 비껴 내려 보는 시각으로 산과 언덕에 둘러싸인 두 궁의 전각과 다리, 담장은 물론 연꽃과 괴석 등 조경까지 실제와 같은 모습으로 선명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림에서 묘사하듯이 궁궐 안에는 많은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
궁궐의 새
1. 궁궐을 찾는 새의 중요성
문화유산으로서 조선시대 궁궐의 가치는 전 세계 어느 문화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며 500년을 이어온 왕실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곳이다. 나라의 안녕과 번성의 원천이 되는 장소였고 역사의 태동이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궁궐이 조선 왕조의 심장과 같은 구실을 했다면 궁궐 후원의 숲은 허파와 같은 구실을 했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창덕궁 후원과 종묘 신림의 식생들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남산, 북한산과 더불어 녹지 띠를 형성하여 살아 있는 생태 축으로서 구실을 하고 있다.
![]() |
새들이 깃들기 위해서는 새끼를 치며 사는 터와 쉬는 터, 먹이 터 등 다양한 환경조건이 필요하고, 이와 더불어 새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궁궐은 하나의 작은 생태 마당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창덕궁 등 궁궐에서 1년 내내 서식하거나 번식하는 새는 100여 종이 되는데, 텃새 20종, 여름철새 31종, 겨울철새 21종, 나그네새 17종이 관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관찰, 기록되고 있는 새가 450여 종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꽤 많은 새들이 궁궐을 찾고 있는 것이다. 새에 관한 사람들의 느낌이나 생각은 시대나 지역을 초월하여 공통된 부분이 있으며, 관념에 따라 신화·전설·민속·무속·풍습·역사·문학·도상 등에서 무한한 상징성을 담고 있다. 자연과 하나되는 마음을 추구했던 우리 조상들은 자연물과 교감함으로써 감정을 표현하거나 심상을나타냈는데 그 가운데서도 새가 인간의 감정과 심상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인식하였다 한다. 새를 단순히 날짐승으로만 보지 않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성구나 속담을 통해 여러 가지 교훈을 상징하기도 하고 농사의 풍흉과 인사의 길흉화복을 예지하기도 했다. 또한 왕뿐만 아니라 여러 선비들이 건전한 사냥 문화로 애용하고 즐기기도 했다. 따라서 새는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한의 정서를 담는 소중한 자연유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풀 뿌리,벌레 한 마리도 소중하게 다루었듯이 새의 문화적인 의미를 되새기면서 잘 살펴보자. |
![]() |
2. 새 관찰 요령과 주의할 사항
- 새는 시력이 좋고 주위를 항상 조심스럽게 살피며 아주 빠르게 움직이므로 가까이 다가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새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10~30미터 떨어져서 관찰합니다.
- 배율이 7~8배인 쌍안경을 사용하여 부리, 머리, 다리, 꼬리, 발, 날개의 상태나 움직이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 독특한 특징을 익힙니다.
- 궁궐을 관람하다가 새 소리가 들리면 두리번거리며 새를 찾기보다는 설명글에 쓰인 새의 울음소리와 대조하여 아름다운 소리를 감상합니다.
- 우리에게 보이는 새는 대개 쉬고 있거나 먹이를 먹고 있을 때입니다.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돌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면 먹이를 먹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새끼를 낳지 못하거나 다시는 궁궐을 찾아오지 않으므로 이런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3. 새의 분류
- 텃새-우리나라에서 번식하며 일년 내내 떠나지 않고 사는 새
- 여름철새-봄에 번식을 위해 우리나라로 날아오고 번식한 후 가을에 남쪽으로 날아가 겨울을 나는 새
- 겨울철새-북쪽에서 번식하고 가을에 우리나라로 날아와서 겨울을 나는 새
- 나그네새-우리나라에서 번식은 하지 않고 봄가을에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새
4. 새의 각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