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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동해건설산업 2025. 10. 23. 12:48

조선과 대한제국

 

조선은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신진사대부와 협력하여 세운 왕조로 첫 국호를 그대로 고려라 하고 수도를 개성으로 두었다. 이후 1394년에 국호를 조선이라 하고, 1398년에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여 500여년간 수도로서 자리매김을 하였다.

26대 국왕이 약 505년 동안 통치하였고, 숭유억불 정책으로 국가를 운영하였다. 1897년에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어 황제국으로 선포하였으며 총 2대 황제가 13년동안 통치하였다가 1910년에 경술국치로 막을 내렸다.

 

조선왕실

 

조선왕실은 왕과 왕비를 비롯해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자, 왕녀, 후궁 등이 구성원을 이룬다. 왕은 단 한명의 부인인 왕비를 두었으며, 왕비가 세상을 떠날 경우에는 그의 자리를 이어서 다음 왕비(계비繼妃)를 둔다.

왕의 아들 중에서 다음 대의 왕위에 오를 아들을 왕세자라 하였고 그의 부인을 왕세자빈이라 하였다. 왕세자를 제외한 나머지 왕의 아들 중에서 왕비의 소생일 경우에는 대군, 후궁의 소생일 경우에는 군이라 하였다. 왕의 딸인 왕녀는 왕비의 소생일 경우에는 공주, 후궁의 소생을 경우에는 옹주라 하였다.

후궁은 사실상 왕의 부인이 아니고, 1품의 빈()부터 종4품의 숙원(淑媛)까지 품계를 받는 여관(女官)이었으며, 후궁이 되는 법은 간택 후궁이 되는 경우와 궁인 중에서 왕의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되는 경우가 있다. 1897년에 대한제국으로 전환되면 왕실의 지위가 황실로 격상되어 왕을 황제, 왕비를 황후, 왕세자를 황태자, 왕세자빈을 황태자비, 왕자를 친왕이라 하였다.

 

조선왕실 가계도

 

 

왕위를 계승할 자, 세자

 

조선시대 왕위 계승의 원칙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우선 중전의 몸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해야 하는 것이고, 왕이 될 사람은 덕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그 두 번째이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왕손은 '대를 이을 아들'이라는 의미의 세자(世子)로 책봉되어, 후계자로서의 준비에 만전을 기울여야 했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국왕과 황제 중에 위의 적장자 원칙에 따라 세자 책봉을 받고 왕위에 오른 임금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7명이다. 적장자는 아니지만 그 덕을 인정받거나 중전에게 아들이 없어 후궁의 아들이나 왕족으로서 왕위에 오른 임금은 19명이다. 의경세자(덕종), 순회세자, 소현세자, 효명세자(문조)가 세자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고, 양녕대군, 연산군의 아들, 광해군의 아들은 폐세자가 되어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대궐의 정전에서 거행된 의식, 세자책봉례

 

세자를 책봉하는 임명서를 수여하는 의식을 '세자책봉례'라고 한다. 세자책봉례는 대궐의 정전에서 거행되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세자책봉례의 순서가 기록되어 있다. 첫 번째 북이 울리면, 의장을 갖추고 군사를 배치한다. 두 번째 북이 울리면, 문무백관과 종친들은 근정문 밖의 위()로 나아가고, 왕세자가 면복을 갖추고 등장한다. 세 번째 북이 울리면, 지위에 따라 종친과 문무백관이 동서로 줄지어 서며, 종이 울리다가 그치면 악기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왕이 가마를 타고 나선다. 문무백관과 왕세자가 왕에게 차례로 사배(四拜)를 하며, 꿇어앉은 세자 앞에서 왕은 전책관을 통해 죽책문(竹冊文), 교명문(敎命文), 세자인(世子印)을 전해 준다.

죽책문은 대나무로 만든 임명장, 교명문은 세자에게 당부하는 훈계문, 세자인은 세자를 상징하는 도장이다. 세자에 책봉된 이후에는 중국 황제의 고명을 받았다. 그리고 성균관에 행차하여 제자로서 공자에게 인사를 드렸다.

 

왕이 되기 위한 훈련, 세자의 하루

 

세자의 자리에 오르면, 궁궐의 동쪽에 거처가 있다 하여 동궁(東宮), 혹은 계절 중 봄에 비유하여 춘궁(春宮)이라 불렸다. 책봉 후에는 세자익위사의 호위를 받으며 조선의 내로라하는 실력자들로 구성된 세자시강원의 관료들로부터 왕으로서 요구되는 식견과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의관을 정제하고 왕을 비롯한 왕실의 어른들에게 문안 인사를 가는 것이 공식 일과의 시작이었다. 문안 인사 후에는 조강, 주강, 석강으로 나뉘는 세자시강원의 강의를 들으며 유교 공부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틈틈이 말 타기, 활쏘기, 붓글씨 등 이른바 육예(六藝)를 연마하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왕실 어른들에게 다시 인사를 드림으로써 세자의 하루는 마감된다.

 

부왕을 대신한 정치, 대리청정

 

세자는 원칙적으로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되며, 위와 같은 일과를 보내며 후계자로서의 자질을 기르는 것을 본분으로 삼아야 했으나, 부왕 대신 국사를 처리하는 대리청정을 하기도 하였다.

세종의 아들 문종,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장조),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문조)의 예가 그러하다.

조선시대 왕의 면복

 

국조오례의에 수록된 왕의 면복이다.

즉위식 또는 제례가 있을 때 면류관과 용, , , 불꽃, 호랑이, 원숭이, 수초, , 도끼, 불의아홉가지 문양이 있는 구장복을 착용하였다.

 

선왕 장례의 한가운데, 세자의 왕위 계승

 

왕실 후계자로 정해진 세자는 언제 왕위를 물려받게 될까? 조선 왕조의 왕위 계승은 선왕이 세상을 떠나거나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이루어졌다. 건강 악화, 반정 등의 이유로 세상을 뜨기 이전에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경우는 태조, 정종, 태종, 단종, 세조, 연산군, 광해군, 고종 8명의 경우에 불과하며, 나머지 19명의 왕은 모두 승하한 후 다음 왕에게 국새를 넘겨주었다. 따라서 조선 왕 대부분의 즉위식은 선왕의 장례 기간에 이루어졌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는 이 의식을 국장절차 중 하나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사위(嗣位), 반교서(頒敎書)라고 한다.

 

어좌에 오르는 순간, 새 왕의 등극

 

왕의 즉위식은 선왕이 승하한 지 6일이 지난 후 거행된다. 선왕의 시신을 모신 빈전의 동쪽에 왕세자가 머물 여막을 치고, 유언장과 국새를 여러 가지 의장물과 함께 설치하여 새 왕에게 국새를 건네 줄 준비를 한다. 왕세자는 여막 안에서 입고 있던 상복을 벗은 다음 예복인 면복(冕服)을 갈아입고 빈전의 뜰로 나아간다. 그리고 선왕의 유언장과 국새를 받아 각각 영의정과 좌의정에게 전해주고는 여막으로 돌아간다.

여막에서 다시 나온 왕세자는 붉은 양산과 푸른 부채를 든 자들에게 둘러싸여 가마를 타고 어좌에 설치된 정전으로 향한다. 이리하여 왕세자가 오른쪽 계단을 통해 어좌에 올라앉는 순간, 새로운 왕이 탄생하게 된다. 즉위교서가 반포된 후 정전에서는 향을 피우고, 즉위식장을 가득 매운 대소 신료들은 두 손을 마주잡아 이마에 얹으면서 천천세(千千歲).”라고 외친다. 이는 왕조의 운명이 오래도록 영원하라는 뜻이다.

 
출생년도
즉위년도
즉위시 나이
즉위장소
재위기간
1대 태조
1335
1392
58세
개성 수창궁
7년
2대 정종
1357
1398
42세
경복궁 근정전
2년
3대 태종
1367
1400
34세
개성 수창궁
18년
4대 세종
1397
1418
22세
경복궁 근정전
32년
5대 문종
1414
1450
37세
동별궁 빈전
2년
6대 단종
1441
1452
12세
경복궁 근정문
3년
7대 세조
1417
1455
39세
경복궁 근정전
13년
8대 예종
1450
1468
19세
수강궁(현재 창경궁) 중문
1년
9대 성종
1457
1469
13세
경복궁 근정문
25년
10대 연산군
1476
1494
19세
창덕궁 인정전
11년
11대 중종
1488
1506
19세
경복궁 근정전
39년
12대 인종
1515
1544
30세
창경궁 명정전
8개월
13대 명종
1534
1545
12세
경복궁 근정문
22년
14대 선조
1552
1567
16세
경복궁 근정전
41년
15대 광해군
1575
1608
34세
정릉동 행궁(현재 덕수궁) 서청
15년
16대 인조
1595
1623
29세
경운궁(현재 덕수궁)
27년
17대 효종
1619
1649
31세
창덕궁 인정문
10년
18대 현종
1641
1659
19세
창덕궁 인정문
15년
19대 숙종
1661
1674
14세
창덕궁 인정문
46년
20대 경종
1688
1720
33세
경덕궁(현재 경희궁) 숭정문
4년
21대 영조
1694
1724
31세
창덕궁 인정문
52년
22대 정조
1752
1776
25세
경희궁 숭정문
24년
23대 순조
1790
1800
11세
창덕궁 인정전
35년
24대 헌종
1827
1834
8세
경희궁 숭정문
15년
25대 철종
1831
1849
19세
창덕궁 인정문
14년
26대 고종
1852
1863
12세
창덕궁 인정문
34년
대한제국 1대 고종
1852
1897
46세
환구단
9년
대한제국 2대 순종
1874
1907
34세
경운궁 돈덕전
3년

왕의죽음

 

단종의 능 장릉

영월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승하한 단종의 능 장릉이다.

 

호화로운 생활과 비례하지 않았던 왕의 건강

 

519년의 긴 세월을 이어온 조선과 대한제국에는 모두 27명의 왕과 황제가 존재하였다. 왕들은 장엄한 궁궐에서 화려한 의복을 입고, 조선의 내로라하는 명의들이 궁궐에서 늘 왕의 건강을 살폈다. 그러나 왕들은 호화로운 환경에서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였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44세로 주로 눈병, 종기, 중풍 등의 병을 겪다가 세상을 떠났다.

 

만기(萬機)를 처리해야 하는 왕의 직업병

 

일단 왕위에 오르면 그 뒤로는 정신없이 바쁜 왕의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처럼 많기 때문에 왕이 집무하는 일들을 만 가지 일이라는 뜻의 만기(萬機)”라고 하였다. 게다가 왕의 집무는 철저히 정신노동이었다. 주로 앉아서 신료들을 접견하고 공문서를 읽었으며, 자리를 이동할 때에는 가마를 이용하였다. 격구나 활쏘기 등의 간단한 활동을 제외하고는 운동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혈액 순환이 원활히 되기가 어려웠고, 당뇨와 고혈압에 쉽게 걸렸다. 눈병이나 종기가 나면 쉽게 낫지 않았으며, 이는 결국 왕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세종과 숙종이 당뇨병으로, 태조, 정종, 태종이 중풍으로 인한 뇌출혈로, 문종, 성종, 효종, 정조, 순조가 종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정치사의 희생양

 

그런가 하면 질병과는 상관없이 정치사의 희생양으로 운명을 달리한 왕도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6대 임금 단종은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당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있어 감옥이나 다름없는 영월의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결국 17세의 어린 나이에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이로서 단종은 가장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단종과는 다른 경우이나 연산군과 광해군도 반정에 의해 폐위되고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왕의이름

 

왕과 왕후의 신위가 안치된 종묘 정전의 감실

왕이 세상을 떠난 지 27개월이 지나면 묘호를 신위에 새겨 종묘에 안치한다.(부묘)

 

왕의 이름

 

왕이란 군주제가 시행되던 시기의 절대 권력자로서 동서를 막론하고 매우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왕의 이름은 많게는 여섯 개까지 있었다.

 

태어나면서 붙여지는 이름

 

일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왕도 태어나면서 이름이 붙여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방원(李芳遠), 이도(李祹), 이척(李坧) 등이 왕의 이름이다. 왕의 이름을 보면, 태종, 단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자를 쓰고 있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임금의 이름은 누구도 함부로 부를 수 없으며, 다른 용도라고 하더라도 왕의 이름에 쓰인 문자를 문서에 쓸 수 없도록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왕자의 이름은 실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하나의 한자만을 써서 만든 것이다.

 

관례 때 받는 이름과 성향을 나타내는 이름, ()와 호()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성인이 되어 관례를 치르면 원래의 이름 외에 성인으로서의 이름을 다시 부여받게 된다. 이를 라고 한다. 이는 원래의 이름을 공경하여 마구 부르기 꺼려하는데서 비롯된 복명속(復命俗 : 두 가지 이상의 이름을 갖는 풍속)을 따른 것이다. 한편 자신이 스스로를 표시하기 위해 붙이거나 스승 또는 친구들이 붙여주는 이름인 호()가 있다. 태조의 호는 송헌(松軒), 정조의 호는 홍재(弘齋)이다.

 

공덕을 기리는 이름, 시호(諡號)와 존호(尊號)

 

왕이 세상을 떠나면 신하들은 왕의 일생과 업적을 평가하여 그에 알맞은 이름을 지어 올린다. 이를 시호라고 한다. 이때 올리는 시호의 글자수는 8글자가 된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왕의 행장을 적어 중국의 황제에게 보내 중국조정에서 시호를 정해준다. 중국에서 받은 시호를 보면 세종의 시호는 장헌(莊憲)이고, 성종의 시호는 강정(康靖)이다. 또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따로 존호를 지어 올리는데, 시호와 마찬가지로 8글자를 올린다. 존호는 왕이 살아있었을 때와 세상을 떠난 후 모두 올릴 수 있다.

 

종묘에서 부르는 이름, 묘호(廟號)

 

왕이 세상을 떠난지 27개월이 지나면, 왕의 신위를 종묘로 모셔오는데, 이 때 종묘에서 부르는 호칭이라는 의미의 묘호가 정해진다. 태종, 세종, 숙종, 영조 등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왕의 이름이 바로 묘호이다. 묘호 역시 시호와 마찬가지로 왕의 일생을 평가하여 결정하게 된다.

묘호는 시호와 다르게 조() 혹은 종()을 붙여 짓는데, 보통 조는 공이 탁월한 왕에게, 종은 덕이 출중한 왕에게 붙이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새로운 종통이 시작되었거나(태조, 세조, 인조), ()에서 조()로 추존(선조, 영조, 순조), 또는 황제로 추존될 때(정조)는 조()를 사용한다.

종묘

영녕전

신실
신위(묘호)
능호
1실
태조고황제
건원릉
(健元陵)
신의고황후
제릉(薺陵)
신덕고황후
정릉(貞陵)
2실
태종
헌릉(獻陵)
원경왕후
3실
세종
영릉(英陵)
소헌왕후
4실
세조
광릉(光陵)
정희왕후
5실
성종
선릉(宣陵)
공혜왕후
순릉(順陵)
정현왕후
선릉(宣陵)
6실
중종
정릉(靖陵)
단경왕후
온릉(溫陵)
장경왕후
희릉(禧陵)
문정왕후
태릉(泰陵)
7실
선조
목릉(穆陵)
의인왕후
인목왕후
8실
인조
장릉(長陵)
인열왕후
장열왕후
휘릉(徽陵)
9실
효종
영릉(寧陵)
인선왕후
10실
현종
숭릉(崇陵)
명성왕후

 

영녕전

신실
신위(묘호)
능호
1실
추존목조
덕릉(德陵)
효공왕후
안릉(安陵)
2실
추존익조
지릉(智陵)
정숙왕후
숙릉(淑陵)
3실
추존도조
의릉(義陵)
경순왕후
순릉(純陵)
4실
추존환조
정릉(定陵)
의혜왕후
화릉(和陵)
5실
정종
후릉(厚陵)
정안왕후
6실
문종
현릉(顯陵)
현덕왕후
7실
단종
장릉(莊陵)
정순왕후
사릉(思陵)
8실
추존덕종
경릉(敬陵)
소혜왕후
9실
예종
창릉(昌陵)
장순왕후
공릉(恭陵)
안순왕후
창릉(昌陵)
신실
신위(묘호)
능호
10실
인종
효릉(孝陵)
인성왕후
11실
명종
강릉(康陵)
인순왕후
12실
추존원종
장릉(章陵)
인헌왕후
13실
경종
의릉(懿陵)
단의왕후
혜릉(惠陵)
선의왕후
의릉(懿陵)
14실
추존진종소황제
영릉(永陵)
효순소황후
15실
추존장조의황제
융릉(隆陵)
헌경의황후
16실
의민황태자

의민황태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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