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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문화유산

동해건설산업 2025. 12. 21. 11:04

국가등록문화유산

 

갑오군정실기[甲午軍政實記] . 전적

유물번호 : 고궁2811

연대 :

재질 : 종이

크기(cm) : 가로: 21cm, 세로: 32.5cm

 

1894(고종 31) 2차 농민전쟁을 토벌한 양호도순무영(兩湖都巡撫營)에 관한 기록으로 필사본 10책 완질이다. 갑오년(1894) 922일부터 1228일까지 당시 상황을 일자별로 기록해두었다.

 

창덕궁 경훈각 삼선관파도[昌德宮 景薰閣 三仙觀波圖] . 회화

유물번호 : 창덕29620

연대 : 1920

재질 : 비단에 채색

크기(cm) : 가로: 524.4cm, 세로: 182cm

 

창덕궁 경훈각의 서쪽 벽 상단에 부착되어 있던 벽화이다. 1920년 서화미술회 출신인 신진 화가 이상범(李象範, 1897-1972)이 그렸다. 그림의 주제는 '삼인문년(三人問年)'으로, 북송의 문인인 소식(蘇軾)동파지림(東坡志林)에 나오는 고사(故事)를 회화화한 것이다. 화면 왼쪽 하단에 세 명의 신선들 중에서 한 신선이 바다를 가리키며 바다가 뽕나무 밭으로 여러 번 변하도록 오래 살았음을 다른 신선들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파노라마처럼 그렸으며 화면 상단부 좌측으로 갈수록 경물의 크기를 줄이고 색채를 흐리게 하여 공간감을 조성하였다. 경훈각은 본래 2층 단독 전각으로 왕실 여성의 생활공간이었으나, 1917년 창덕궁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전각을 재건하면서 대조전에서 뒤편 행각으로 이어지도록 단층 전각으로 재설계하였고 이후에는 왕비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재건 당시 경훈각의 동서벽에는 청록산수화인 조일선관도와 삼선관파도로 장식하였고, 왕과 왕비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창덕궁 경훈각 조일선관도[昌德宮 景薰閣 朝日仙觀圖] . 회화

유물번호 : 창덕29619

연대 : 1920

재질 : 비단에 채색

크기(cm) : 가로: 525.4cm, 세로: 183.5cm

 

창덕궁 경훈각의 동쪽 벽 상단에 부착되어 있던 벽화이다. 1920년 서화미술회 출신인 신진 화가 노수현(盧壽鉉, 1899-1978)이 그렸다. 중국의 고사를 그린 이 그림은 중앙에 신선이 산다는 해옥(海屋)이 있고 좌측 하단의 두 동자가 각각 복숭아와 거북이를 들고 해옥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는 왕의 장수를 축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화면 좌측에 산과 나무가 밀집되어 있고 우측 상단에 붉은 해가 떠올라 있으며, 하단에 넘실대는 바다 물결을 표현하였다. 경훈각은 본래 2층 단독 전각으로 왕실 여성의 생활공간이었으나, 1917년 창덕궁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전각을 재건하면서 대조전에서 뒤편 행각으로 이어지도록 단층 전각으로 재설계하였고 이후에는 왕비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경훈각의 동서벽에는 청록산수화인 조일선관도와 삼선관파도로 장식하였고, 왕과 왕비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근대기 제작 진전 봉안 어진 . 회화

유물번호 :

연대 : 1826(순조 26)~1936

재질 : 견복 채색

크기(cm) :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은 조선왕조의 정통성과 권위를 표상하는 것으로, 등록문화재로 등록된근대기 진선 봉안 어진은 태조어진(홍룡포본원종어진·순조어진·순종어진 4점이다. 이들 어진은 6·25 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옮겨졌으며 전쟁 직후 보관창고 화재로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용안의 일부와 곤룡포·신발·용상·채전(彩氈, 무늬가 있는 깔개) 등의 색채와 문양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태조어진(홍룡포본)은 함경남도 영흥의 준원전(濬源殿)에 봉안되어 있던 태조어진을 1900년에 조석진, 채용신 등이 이모(移模)한 것으로, 조선 초기 중년기의 태조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종어진은 인조의 아버지(정원군, 원종으로 추존)의 어진으로서 왕자군(王子君)만 사용할 수 있었던 백택(白澤) 흉배가 부착된 흑단령(黑團領)을 입은 모습으로 17세기 초반의 공신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특이하다. 원종어진은 창덕궁 신선원전에 봉안되어 있던 어진을 1936년에 김은호가 이모한 것이다. 순조어진은 절반 이상이 불에 타 얼굴을 확인할 수 없으나, 표제가 남아있어 순조어진임을 알 수 있다. 순조어진은 검은 원유관과 붉은 강사포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순종어진은 순종황제가 1926년 승하한 후 1928년에 그려진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제작되었지만 조선왕조의 어진 제작 전통에 따라 진전 봉안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진 제작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다만, 어진 중 원종·순종어진 제작에 참여한 김은호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포함된 인물이다.

 

창덕궁희정당 금강산만물초승경도[昌德宮熙政堂 金剛山萬物肖勝景圖]

유물번호 : 창덕28312

연대 :1920

재질 : 비단에 채색

크기(cm) : 세로: 205.1cm, 가로: 883.0cm

 

창덕궁 희정당의 서쪽 벽에 부착되어 있던 벽화이다.

희정당의 동서 벽은 금강산의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장식하였는데 이 중에서 서쪽 벽에는 금강산의 가을전경을 그린 그림을 두었다. 붉은 색 단풍으로 물들고 구름으로 둘러 싸인 금강산의 가을 전경을 화려한 채색으로 표현하였다. 화폭의 상단에는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가 묵서로 적혀 있다.

희정당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영역에 있다. 본래 왕과 신하가 만나 국정을 논하던 곳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순종황제가 여러 관리나 손님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사용되었다. 1917년 창덕궁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전각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1920년 전각의 내부 일부를 벽화로 장식하였는데 이 중에서 희정당의 동서벽에는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그린 금강산 그림 두 점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김규진은 평안남도 출생으로, 1897년 궁내부 외사과(外事課)와 예식원(禮式院) 문서과의 관직을 얻었고, 1901년에는 영친왕의 서법을 지도하는 한편 궁내부 시종에 임명된 화가이다. 그는 1915년에 발족한 서화연구회의 대표 자격으로 창덕궁 희정당 벽화조성을 의뢰받았다. 희정당 벽화는 실제 금강산을 유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금강산의 기세와 절경을 궁중화법과 근대화법을 절충하여 그렸다는 점에서 192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회화적 경향이 반영되어 있다.

 

창덕궁희정당 총석정절경도[昌德宮熙政堂 叢石亭絶景圖]

유물번호 : 창덕28311

연대 : 1920년대

재질 :비단에 채색

크기(cm) : 세로: 205.1cm, 가로: 883.0cm

 

창덕궁 희정당의 동쪽 벽에 부착되어 있던 벽화이다.

희정당의 동서 벽은 금강산의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장식하였는데 이 중에서 동쪽 벽에는 금강산 총석정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두었다. 화면 중앙에는 좌우 파노라마 형식으로 바위산을, 그 뒤쪽으로 토산을 그리고, 왼편에 있는 토산 정상에 소나무에 둘러싼 총석정을 그렸다. 화면 상단의 후경에는 옅은 채색으로 구름이 피어오르는 산세를 표현하였으며, 화면 하단에는 바위산 아래쪽으로 물결무늬를 촘촘하게 넣은 바다를 표현하였다. 화폭의 상단에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라는 제목이 있고, 그 왼쪽에는 위아래로 김규진근사(金圭鎭謹寫)’라는 글씨와 그의 낙관이 있다.

희정당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영역에 있다. 본래 왕과 신하가 만나 국정을 논하던 곳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순종황제가 여러 관리나 손님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사용되었다. 1917년 창덕궁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전각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1920년 전각의 내부 일부를 벽화로 장식하였는데 이 중에서 희정당의 동서벽에는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그린 금강산 그림 두 점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김규진은 평안남도 출생으로, 1897년 궁내부 외사과(外事課)와 예식원(禮式院) 문서과의 관직을 얻었고, 1901년에는 영친왕의 서법을 지도하는 한편 궁내부 시종에 임명된 화가이다. 그는 1915년에 발족한 서화연구회의 대표 자격으로 창덕궁 희정당 벽화조성을 의뢰받았다. 희정당 벽화는 실제 금강산을 유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금강산의 기세와 절경을 궁중화법과 근대화법을 절충하여 그렸다는 점에서 192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회화적 경향이 반영되어 있다.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 기타

유물번호 : 고궁532-1

연대 : 1905, 1906, 1908

재질 : 종이

크기(cm) : 가로: 35cm, 세로: 51cm

 

영국인 배설(Ernest Thomas Bethell, 1872~1909)19047월에 영문판과 한글판으로 창간한 신문이다. 영문판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이름으로, 한글판은 大韓每日申報, 대한매일신보’, 라는 이름으로 발행하였으며 영문판은 4, 한글판은 2, 6면으로 발행하다가 1905811일부터는 국한문판과 영문판 2개의 신문으로 분리되었다.

이 신문은 치외법권의 특권을 누리면서 일본의 탄압을 피해 항일운동의 본거지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논설진으로는 양기탁을 비롯하여 박은식, 신채호 등이 참여한 한말 최대의 민족지이다.

항일의병투쟁, 국채보상운동, 애국계몽운동 등 한국민족운동사의 핵심 사항을 알 수 있고, 우리나라 근대사를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1905815~1906415일자, 190859일자를 소장하고 있다. 그 세부 유물목록은 다음과 같다.

 

<발행 일자>

1905

8: 15

9: 10/ 13/ 15/ 16/ 19/ 20/ 21/ 22/ 23/ 24/ 26/ 27/ 28/ 29/ 30

10: 1/ 3/ 4/ 5/ 6/ 7/ 8/ 10/ 12/ 13/ 14/ 15/ 16/ 19/ 20/ 21/ 22/ 24/ 25/ 26/ 27/ 28/ 29/ 31

11: 1/ 2/ 3/ 5/ 7/ 8/ 9/ 11/ 12/ 14/ 15/ 17/ 18/ 19/ 21/ 22/ 23/ 24/ 25/ 26

 

1906

1: 30/ 31

2: 1/ 2/ 3/ 4/ 6/ 7/ 8/ 9/ 10/ 11/ 13/ 14/ 15/ 16/ 17/ 18/ 20/ 22/ 23/ 24/ 25/ 27/ 28

3: 1/ 2/ 4/ 6/ 7/ 8/ 9/ 10/ 11/ 13/ 14/ 15/ 16/ 17/ 18/ 20/ 21/ 22/ 23/ 24/ 25/ 27/ 28/ 29/

30/ 31

4: 1/ 3/ 4/ 5/ 6/ 7/ 8/ 10/ 11/ 12/ 13/ 15

 

1908

5: 9

 

유물 번호: 고궁532-1, 고궁580-2~580-62, 580-106~580-168

 

창덕궁 대조전 백학도[昌德宮大造殿 白鶴圖] . 회화

유물번호 : 창덕23432

연대 : 1920

재질 : 벽화

크기(cm) : 세로: 214cm, 가로: 578cm

 

창덕궁 대조전의 서쪽 벽에 종이로 그려 붙였던 부벽화이다.

16마리의 백학과 소나무, , 구름, , , 영지 등을 함께 그려 십장생을 표현하였고,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도 탐스럽고 화사하게 표현하여 왕실의 생활공간에 잘 어울리도록 하였다.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영역에 있으며, 순종황제 부부의 침전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917년 창덕궁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전각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전각의 일부 내부를 벽화로 장식하였는데 이 중에서 대조전의 동서벽에는 화조화인 봉황도와 백학도로 장식하였다. 그림은 왕실이 후원한 미술교육기관인 서화미술회 제2회 교육생이었던 김은호(金殷鎬, 당시 29)1920년에 그렸다.

이 백학도는 채색 화조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화려한 채색과 섬세한 필치를 특징으로 하는 왕실 장식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이전에는 같이 그려지지 않던 소재들이 함께 그려지거나 새로운 소재가 더해져 있어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다.

 

창덕궁 대조전 봉황도[昌德宮大造殿 鳳凰圖] . 회화

유물번호 : 창덕23431

연대 : 1920

재질 : 벽화

크기(cm) : 세로: 214cm, 가로: 578cm

 

창덕궁 대조전의 동쪽 벽에 종이로 그려 붙였던 부벽화이다.

10마리의 봉황과 함께 바위, 폭포, 모란, 오동나무 등을 화려하게 표현하여 왕실의 생활공간에 잘 어울리도록 하였다.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영역에 있으며, 순종황제 부부의 침전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917년 창덕궁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전각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전각의 일부 내부를 벽화로 장식하였는데 이 중에서 대조전의 동서벽에는 화조화인 봉황도와 백학도로 장식하였다. 그림은 왕실이 후원한 미술교육기관인 서화미술회 제1회 동기생이었던 오일영(당시 31)과 이용우(당시 17)1920년에 합작으로 그렸다.

이 봉황도는 채색 화조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화려한 채색과 섬세한 필치를 특징으로 하는 왕실 장식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이전에는 같이 그려지지 않던 소재들이 함께 그려지거나 새로운 소재가 더해져 있어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다.

 

순종황후어차[純宗皇后御車] . 기타

유물번호 : 창덕12949

연대 : 20세기 초

재질 : 금속·나무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탔던 어차이다.

순정효황후의 어차는 순종의 어차보다 크기가 작으나 자동차의 형태나 장식이 순종어차에 비해 더욱 유려하다. 내부는 황실문장인 오얏꽃을 수놓은 황금색 비단으로 꾸며져 있으며, 차체는 목재, 외부도장은 칠()로 되어 있다. 운전석 뒷편 의자를 접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순종어차와 같다.

영국의 자동차 회사 다임러(DAIMLER)가 제작한 리무진으로 1914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7인승, 20마력, 배기량 3,309cc이다. 전세계적으로 3대만 남아 있고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동차로 세계 자동차 발달사는 물론 우리나라 자동차의 역사 및 황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1992년 당시 문화재관리국과 현대자동차가 복원 작업에 뜻을 모아 1997년부터 5년에 걸쳐 원형에 가깝게 수리·복원되었다.

 

순종어차[純宗御車] . 기타

유물번호 : 창덕12948

연대 : 20세기 초

재질 : 금속·나무

크기(cm) : 길이 478.8cm, 175.8cm, 높이 210cm

 

순종이 탔던 어차이다.

차체에는 황실문장인 황금 오얏꽃 장식을 붙였고 내부는 오얏꽃이 수놓인 황금색 비단으로 꾸며 황실 어차로서 위엄과 화려함을 갖추었다. 운전석 뒷편의 의자를 접거나 펼칠 수 있도록 하여 공간을 활용하는 실용성도 겸비하였다. 차체는 철재가 아닌 목재이고 외부는 칠()로 칠해져 있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 (GM)가 제작한 캐딜락 리무진으로 1918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7인승, 31.25마력, 배기량 5,153cc이다. 전체적인 형태가 마차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초기 자동차 모델의 특징을 보여준다.

1992년 당시 문화재관리국과 현대자동차가 복원 작업에 뜻을 모아 1997년부터 5년에 걸쳐 원형에 가깝게 수리·복원되었다.

 

은제이화문탕기[銀製李花文湯器] . 금속공예

유물번호 : 창덕12950

연대 : 1910

재질 : 금속

크기(cm) : 지름: 184cm, 높이: 118cm

 

대한제국 황실에서 사용하였던 은으로 만든 탕기(湯器)이다. 황실연회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면을 망치로 두드린 단조(鍛造)기법으로 제작하였다. 덮개와 몸체 중앙에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인 오얏꽃(李花)을 음각으로 새겼고 덮개에 萬壽無疆문자를 양각으로 감입(嵌入)하고 연봉형 꼭지를 달아 전통을 이으려는 의도에 실용성을 가미하였다.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서 1910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왕직미술품제작소는 1908년 왕실에서 사용하는 기물을 제작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설립당시의 명칭은 한성미술품 제작소였다. 이후 1910년에 이왕직미술품제작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 기관은 당시, 기계생산으로 공예품의 질적수준이 떨어지고 전통수공업체계게 붕괴되는 상황에서 조선의 전통적 미술공예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이 탕기는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적 실용성을 가미하였고, 황실 연회에 사용한 흔적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공예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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