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직단[Sajikdan Altar]

사직단 소개·역사


사직단(社稷壇)은 조선시대 토지의 신(사신社神)과
곡식의 신(직신稷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땅과 곡식이 국가 경제의 근본이었기 때문에, 고대부터 사직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사직단은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 ‘궁궐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세운다’는 예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창건하였다. 그리고 이를 관리하고 제사와 실무를 담당하는 관청을 사직서(社稷署)라 하였다. 사직단은 종묘와 더불어 조선왕조의 근간이 되었던 곳으로 국가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 지내는 기고제,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 등의 제사가 사직단에서 행해졌다. 그 밖에 사직단 경내에는 대문(大門)과 안향청(安香廳,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곳), 전사청(典祀廳, 제례 음식을 마련하는 곳) 등의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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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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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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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년(태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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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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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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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으로 사직의 신위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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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선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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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으로 사직의 신위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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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인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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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으로 사직의 신위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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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숙종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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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청 중수, 신실 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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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년(숙종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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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청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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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광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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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선포, 국사와 국직의 신위를 태사와 태직으로 높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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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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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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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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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일대를 고적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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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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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을 사적으로, 대문을 보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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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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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보수정비 시작, 사직대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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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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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청 권역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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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이야기
사직단 대문

사직단_사직단 대문_대문(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사직단 대문_전경(궁능유적본부)
사직단 대문(社稷壇 大門)은 외곽 담장과 연결되어 있던 사직단의 외곽문이다. 정면 3칸, 옆면 2칸의 구조로, 대문 가운데 위쪽에는 ‘사직단’ 현판이 1962년부터 걸려있다. 원래 약 24m 앞쪽에 있었으나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안향청

사직단_안향청_전경(궁능유적본부)
안향청(安香廳)은 사직제사 때 사용하는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곳이다. 평상시에는 사직서 관원들이 사용하다가 왕이 행차할 시에는 왕이 머무는 어재실(御齋室)로도 사용되었다.
전사청 권역

사직단_전사청 권역_내부 1(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전사청 권역_내부 2(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전사청 권역_전경(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전사청 권역_전사청(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전사청 권역_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전사청 권역(典祀廳 圈域)은 사직제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마련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사직단을 관리하는 수복이 머무는 수복방(守僕房),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 외의 물건을 보관하는 잡물고(雜物庫), 제사에 사용하였던 우물인 제정(祭井),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음식을 마련하던 전사청(典祀廳), 제사에 쓸 소·양·돼지를 잡던 재생정(宰牲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절구를 두고 곡물을 찧는 곳인 저구가(杵臼家), 제사 전 음식을 두는 찬만대(饌幔臺)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단과 직단

사직단_사단과 직단_북문(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사단과 직단_사단과 직단(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사단과 직단_신실(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사단과 직단_전경(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사단과 직단_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사단(社壇)과 직단(稷壇)은 사신과 직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다. 정사각형 모양으로 돌을 3단으로 쌓고 안은 황토로 채우고 사방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사단과 직단은 낮은 담(유壝) 안에 위치하는데 담의 네 면에는 문(유문壝門)이 하나씩 있다. 그리고 유와 신실, 판위 등을 두른 담장(주원周垣)에는 사방에 4개의 신문(神門)을 세웠다. 특히 바깥쪽에 있는 북쪽 신문은 신이 드나드는 문이기 때문에 삼문(三門)으로 조성되었다.
사신(社神)과 직신(稷神)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각 단에 국사지신(國社之神)과 국직지신(國稷之神)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으며, 두 신위와 더불어 각각 후토씨지신(后土氏之神)과 후직씨지신(后稷氏之神)의 신위도 같이 모셨다. 1897년(광무 1) 대한제국 선포 후 국사지신과 국직지신은 각각 태사지신(太社之神)과 태직지신(太稷之神)으로 높였다.
사직대제

사직단_사직대제 1(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사직대제 2(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사직대제 3(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사직대제 4(궁능유적본부)

사직단_사직대제 5(궁능유적본부)
사직대제(社稷大祭)는 토지의 신(사신社神)과 곡식의 신(직신稷神)에게 국가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올리는 제사이다. 사직대제는 종묘대제와 함께 오례의(五禮儀)의 길례(吉禮) 중 대사(大祀)에 속하는 제사로 격식과 규모가 큰 제사이다. 조선시대에는 춘추제(春秋祭)와 납제(臘祭)를 지냈는데, 춘추제는 봄의 가운데 달인 음력 2월과 가을의 가운데 달인 음력 8월 무일(戊日)에 지내는 제사이고, 납제는 음력 11월 동지 이후 세 번째 미일(未日)에 지내는 제사이다. 사직대제는 대한제국 시기까지 지냈으나 일제강점기에 폐지되어 신주가 불태워졌다. 1988년에 다시 복원되었으며, 2000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매년 9월 넷째 주 토요일에 봉행하고 있다. 사직대제의 제기는 변(邊), 두(豆), 보(簠), 궤(簋), 작(爵) 등이 있고, 음식(제수)은 희생(소, 양, 돼지고기), 곡물(쌀, 수수, 찰기장 등), 떡, 젓갈, 과실 등이 있다. 그 밖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 알리는 기고제 등을 지냈다.
▷ 사직대제 순서
① 전폐례(奠幣禮) : 신에게 폐백을 올리는 의식
② 진숙(進熟) : 제수(희생)를 올리는 의식
③ 초헌례(初獻禮) : 신에게 첫 번째 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 의식
④ 아헌례(亞獻禮) : 신에게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
⑤ 종헌례(終獻禮) : 신에게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
⑥ 음복례(飮福禮) : 제사에 쓴 술과 음식을 먹는 의식
⑦ 철변두(撤籩豆) : 제사에 쓴 제기를 거두는 의식
⑧ 망료(望燎) : 축문과 폐백을 불사르는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