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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및 종묘

동해건설산업 2025. 10. 18. 10:44

창덕궁 소개

 

왕에게 사랑받는 창덕궁(사적)

 

창덕궁은 1405(태종5) 조선왕조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자리한 창덕궁은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리기도 했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선조는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의 복구를 선조 40(1607)에 시작하였으며, 창덕궁은 광해군 2(1610)에 중건이 마무리 되었다.

 

그 후 창덕궁은 16233월 인조반정으로 인정전을 제외하고 또다시 불에 타는 시련을 겪는다. 인조 25(1647)에 복구되었으나 크고 작은 화재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특히 1917년 대조전을 중심으로 내전 일곽이 손실되는 대화재가 일어났다. 이때 창덕궁을 복구하기 위하여 경복궁 내의 교태전을 비롯한 강녕전 동·서행각 등의 건물이 해체 전용되었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때부터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가지 총 258년 동안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하며 정사를 편 궁궐이다.

 

북한산의 매봉 기슭에 세운 창덕궁은 다른 궁궐과는 달리 나무가 유난히 많다. 자연의 산세를 갈려 건축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건물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을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하였다.

 

또한,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한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조경을 보여주는 창덕궁의 후원을 통해 궁궐의 조경양식을 알 수 있다. 후원에는 160여 종의 나무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300년이 넘는 나무도 있어 원형이 비교적 충실히 보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조경이 훼손되지 않고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귀중한 장소이다.

 

창덕궁 이야기

 

돈화문

창덕궁_돈화문_돈화문 전경(궁능유적본부)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태종 12)에 처음 지어졌는데 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 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9(광해군 1)에 다시 지었는데, 규모는 2층 누각형 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하였고, 신하들은 보통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북한산의 매봉 기슭에 세운 창덕궁은 다른 궁궐과는 달리 나무가 유난히 많다. 자연의 산세를 갈려 건축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건물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을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하였다.

 

또한,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한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조경을 보여주는 창덕궁의 후원을 통해 궁궐의 조경양식을 알 수 있다. 후원에는 160여 종의 나무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300년이 넘는 나무도 있어 원형이 비교적 충실히 보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조경이 훼손되지 않고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귀중한 장소이다.

 

금천교

창덕궁_금천교_금천교 난간(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금천교_금천교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금천교_금천교 정면(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금천교_금천교 측면(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금천교_금천교(궁능유적본부)

 

금천교(錦川橋)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진선문(進善門) 사이를 지나가는 명당수, 즉 금천(禁川) 위에 세운 돌다리이다. 금천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돈화문 동쪽 궐 밖으로 빠져나간다. 금천교는 창덕궁이 창건되고 6년 뒤인 1411(태종 11)에 조성되어 현재까지 잘 남아있는 돌다리로, 현존하는 궁궐의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되었다.

 

규모는 길이 12.9m, 너비 12.5m, 전체적인 구조는 홍예(虹蜺, 무지개 모양) 2개를 받치고 그 위에는 장대석 모양의 멍에돌(駕石)을 얹었다. 다리 옆면 홍예 사이의 벽에는 귀면(鬼面)을 새겼고, 그 아래쪽 두 홍예 가운데에는 남쪽에는 해태로 추정되는 석상, 북쪽에는 거북이를 닮은 석상을 배치하였다. 금천교는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궐내각사

창덕궁_궐내각사_약방(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궐내각사_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궐내각사_측면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궐내각사_향나무(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궐내각사_홍문관(궁능유적본부)

 

궐내각사(闕內各司)는 궁궐 내의 관청을 의미하는데,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위해 특별히 궁궐 안에 세운 관청을 말한다. 인정전 서쪽 금천교 뒤로 동편에 약방(내의원), 옥당(홍문관), 예문관이, 서편에 내각(규장각), 봉모당(奉謨堂), 검서청(檢書廳) 등이 있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2000~2004년에 복원하였다.

 

궐내각사 내각(규장각) 북쪽에는 수령이 750여 년 된 향나무가 있다. 향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피우는 향의 재료로도 쓰이며 정원이나 공원에 많이 심는다. 창덕궁의 향나무는 동서남북으로 1개씩 가지가 뻗어나갔는데 남쪽 가지는 잘렸고, 북쪽 가지는 죽었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한 기형으로 자라서 지금의 수형(樹形)을 이루고 있다. 이 향나무는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선원전

창덕궁_선원전_선원전 1(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선원전_선원전 2(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선원전_선원전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선원전_전경 1(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선원전_전경 2(궁능유적본부)

 

선원전(璿源殿)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1656(효종 7)에 경덕궁(慶德宮, 현 경희궁)의 경화당을 옮겨 지은 춘휘전(春暉殿)을 숙종 대부터 선원전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1921년에 후원 깊숙한 곳에 새 선원전을 건립하고 어진을 옮겨가면서 이곳을 구 선원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선원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인정전과 인정문

창덕궁_인정전과 인정문_인정문 야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인정전과 인정문_인정문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인정전과 인정문_인정전 내부(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인정전과 인정문_인정전 야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인정전과 인정문_인정전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인정전과 인정문_인정전(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인정전과 인정문_전체 전경 1(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인정전과 인정문_전체 전경 1(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인정전과 인정문_전체 전경 2(궁능유적본부)

 

인정전(仁政殿)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 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인정어진 정치라는 뜻이다. 인정전은 창덕궁이 창건될 때 건립되었으나 1418(태종 18)에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광해군 2)에 재건, 1803(순조 3)에 소실된 것을 다음 해에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

 

인정전은 2단의 월대 위에 웅장한 중층 전각으로 지어졌는데, 월대의 높이가 낮고 난간이 없어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하면 소박한 모습이다. 내부 바닥은 원래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되어있다. 마루는 전등, 커튼, 유리창문 등과 함께 1908(융희 2)에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인정전 앞마당, 즉 조정(朝廷)은 다른 궁궐의 정전과 같이 박석이 깔려 있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조정에는 품계석을 놓았다. 인정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외행각 일부는 1991년 이후에 복원하였다.

 

인정문(仁政門)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의 정문으로 앞면 3,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인정문은 왕의 장례(국장)가 있을 때 다음 왕의 즉위식을 치렀던 곳으로 이곳에서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이 왕위에 올랐다. 인정문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선정전

창덕궁_선정전_선정전 내부(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선정전_선정전 입구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선정전_선정전 입구(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선정전_선정전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선정전_선정전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선정전(宣政殿)선정정교(政敎)를 선양(宣揚)한다,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라는 뜻으로, 왕이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이다. 이곳에서 조정 회의, 업무 보고,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다. 이곳은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朝啓廳)이라 불렀는데, 1461(세조 7)에 지금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쳐 인조반정 때 소실되었다가 1647(인조 25) 인경궁의 편전인 광정전(光政殿)을 옮겨 지었는데,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선정전은 편전의 용도 외에 경로잔치인 양로연과 왕비의 하례식, 혼전(魂殿, 왕과 왕비의 신주를 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임시로 신주를 모시는 건물)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선정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희정당

창덕궁_희정당_입구 야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희정당_입구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희정당_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희정당_희정당 내부 2(궁능유적본부)

창덕궁_희정당_희정당 전경(궁능유적본부)

 

희정당(熙政堂)희정화락한 정치라는 뜻으로, 원래는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침전 건물이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편전으로 기능이 바뀐 건물이다. 창건 당시 이름은 숭문당(崇文堂)이었으나 1496(연산군 2)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원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혼전으로 사용되면서,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희정당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에는 여러 개의 돌기둥 위에 세운 아담한 집이었고 마당에 연못도 있었다. 그러나 1917년 대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가 1920년 경복궁 강녕전을 옮겨다 복원하였는데, 이때 내부를 쪽매널 마루(여러 가지 색깔이나 무늿결이 있는 널조각을 붙여 깐 마루)와 카펫, 유리 창문, 샹들리에 등을 설치하여 서양식으로 꾸몄다. 희정당 앞쪽은 전통 건물에서 볼 수 없는 현관의 형태로 되어있고, 자동차가 들어설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다. 희정당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조전

창덕궁_대조전_대조전 월대(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대조전_대조전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대조전_대조전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대조전_대조전 정면(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대조전_대조전 화계(궁능유적본부)

 

대조전(大造殿)대조큰 공업을 이룬다라는 뜻으로, 창덕궁의 정식 침전이자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전각 중 유일하게 용마루가 없는 건물로, 창덕궁 창건 당시부터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었다. 현재의 대조전은 1917년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20년 경복궁 교태전을 옮겨 희정당처럼 내부를 마루와 유리창 등 서양식으로 꾸몄다.

 

대조전에서 추존 문조(효명세자)가 태어났고, 성종, 인조, 효종, 효현황후 김씨(헌종 첫 번째 왕비), 철종, 순종이 세상을 떠났다. 특히 대조전 부속 건물인 흥복헌(興福軒)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대조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성정각

창덕궁_성정각_보춘정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성정각_성정각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성정각_성정각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성정각_집희 내부(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성정각_집희 전경(궁능유적본부)

 

성정각(誠正閣) 일원은 창덕궁의 동궁, 즉 왕세자의 교육 공간이다. ‘성정성심껏 마음을 바르게 하다라는 뜻으로,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숙종 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성정각은 왕세자의 교육 공간이지만 기록에 의하면 여러 왕이 독서하던 곳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곳에는 성정각과 그 뒤로 집희(緝熙)’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관물헌(觀物軒)이 있다. 관물헌은 대한제국 2대 순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원래는 성정각 옆, 현재는 후원으로 넘어가는 넓은 길에는 왕세자의 생활공간인 중희당(重熙堂)이 있었으나, 지금은 중희당의 부속 건물인 칠분서(七分序)와 삼삼와(三三窩), 승화루(承華樓) 등만 낙선재 뒤로 남아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궐내각사 내에 있던 내의원이 성정각 일대로 옮겨졌다.

 

낙선재

창덕궁_낙선재_낙선재 내부(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낙선재_낙선재 야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낙선재_낙선재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낙선재_낙선재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낙선재_낙선재 후원(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낙선재_석복헌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낙선재_수강재 전경(궁능유적본부)

 

낙선재 일원은 조선 24대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하면서, 1847(헌종 13)에 창경궁 낙선당 터에 낙선재를 지었고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 ‘석복’ : 복을 내려줌)과 수강재(壽康齋, ‘수강’ : 오래 살고 건강함)를 지었다. 낙선재의 낙선선을 즐긴다라는 뜻으로,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사용하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였던 순원황후 김씨(순조의 왕비)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낙선재 일원은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고, 낙선재 뒤로는 후원을 만들었다. 건물과 후원 사이에는 작은 석축들을 계단식으로 쌓아 화초를 심었고, 그 사이사이에 세련된 굴뚝과 괴석들을 배열했다. 궁궐의 품격과 여인의 공간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정원이다.

 

특히 이곳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순정황후 윤씨와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가족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낙선재는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낙선재 주련(柱聯) 내용 (위치 : 낙선재 외부 기둥)

 

瓦當文延年益壽(와당문연년익수) : 와당에는 연년익수(延年益壽)라고 씌어 있고

銅盤銘富貴吉祥(동반명부귀길상) : 동반에는 부귀길상(富貴吉祥)이라고 새겨져 있네.

山隨水曲趣無盡(산수수곡취무진) : 산이 물을 따라 굽이치니 흥취가 다함이 없고

竹與蘭期坐有情(죽여란기좌유정) : 대와 난과 기약하였으니 자리에 정이 넘치네.

經學精硏無嗜異(경학정연무기이) : 경학을 정밀히 연구하여 특이함을 좋아하지 않았고,

藝林博綜乃逢原(예림박종내봉원) : 문예를 널리 종합하여 이에 근원을 만났도다.

滿襟龢氣春如海(만금화기춘여해) : 가슴 가득한 화기(和氣)는 봄이 되니 바다와 같고

萬頃文瀾月在天(만경문란월재천) : 만 이랑에 문기는 달이 하늘에 있는 것 같도다.

可釣可畊盤谷序(가조가경반곡서) : 낚시질할 만하고 밭갈이할 만하니 반곡서(盤谷序)이고

堪詩堪畵輞川圖(감시감화망천도) : 시 지을 만하고 그림 그릴 만하니 망천도(輞川圖)로다.

四壁圖書供嘯傲(사벽도서공소오) : 사방에 가득한 도서(圖書)는 홀로 즐기게 해주고

半窓風月任吟哦(반창풍월임음아) : 반쪽 창의 풍월(風月)은 마음껏 읊조리게 해주네.

閒眠東閣修花史(한면동각수화사) : 한가로이 동각(東閣)에서 잠자며 화사(花史)를 수정하고

偶坐南池注水經(우좌남지주수경) : 우연히 남지(南池)에 앉아 수경(水經)에 주석을 하네.

名紙勝於求趙璧(명지승어구조벽) : 좋은 종이는 조벽(趙璧)을 구하는 것보다 낫고

異書渾似借荊州(이서혼사차형주) : 기이한 서적은 형주(荊州)를 빌려온 듯하네.

閒將西蜀團窠錦(한장서촉단과금) : 한가로이 서촉(西蜀)의 단과금(團窠錦)을 가져와

因誦東坡憶雪詩(인송동파억설시) : 이어서 동파(東坡)의 억설시(憶雪詩)를 읊노라.

太史文章臣瓚注(태사문장신찬주) : 태사(太史: 司馬遷)의 문장은 신찬(臣瓚)이 주석을 하였고

尙書孝友君陳篇(상서효우군진편) : 상서(尙書: 書經)의 효도와 우애는 군진편(君陳篇)에 자세하네.

擬寫山經徧大荒(의사산경편대황) : 산경(山經)을 쓰고자 대황(大荒)에까지 두루 다니네.

 

후원

창덕궁_후원_1 부용지 일원(궁능유적본부)

창덕궁_후원_2 애련지 일원(궁능유적본부)

창덕궁_후원_3 관람지 일원(관람정)(궁능유적본부)

창덕궁_후원_4 관람지 일원(존덕정)(궁능유적본부)

창덕궁_후원_5 옥류천 일원(궁능유적본부)

 

창덕궁 후원은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일원으로 나뉜다. 태종이 창덕궁을 창건할 당시 조성한 후원은 세조 대에 확장하였고, 성종 대에 건립된 창경궁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후원 권역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소실되었고, 1610(광해군 2)에 다시 조성되었다. 이후 인조, 숙종, 정조, 순조 등 여러 왕들이 개수하고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정자를 만들었다. 4개의 골짜기에는 각각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纜池), 옥류천(玉流川) 영역이 펼쳐진다.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갈수록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고 깊숙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북한산 자락 응봉으로 이어진다.

 

창덕궁 후원은 왕가의 휴식과 산책을 위한 곳이지만, 여러 가지 다른 용도로도 사용하였다. 자연 풍광을 느끼면서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는 것을 포함하여 군사훈련 등의 활쏘기 행사, 연못에서 낚시를 하거나 배를 띄우기도 하고 꽃구경을 하였으며, 화약을 이용한 불꽃놀이도 하였다. 또 대비를 모시는 잔치, 종친이나 신하를 위로하는 잔치 등 임금이 주관하는 잔치도 자주 열렸다. 또한 왕은 이곳에 곡식을 심어 농사를 직접 체험하고, 왕비는 양잠을 직접 시행하는 친잠례(親蠶禮)를 열었다.

 

부용지 일원

창덕궁_부용지 일원_부용정 지붕(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부용지 일원_부용정(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부용지 일원_부용지 내부(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부용지 일원_부용지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부용지 일원_부용지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용지(芙蓉池) 일원은 창덕궁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이다. 300(1000) 넓이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을 지었다.

 

부용정(芙蓉亭)은 부용지 남쪽에 있는 정자로, ‘부용연꽃을 의미한다. 원래는 1707(숙종 33) 택수재(澤水齋)라는 이름의 건물을 지었는데, 1793(정조 17)에 건물을 고쳐 짓고 이름을 부용정으로 바꾸었다. 부용정은 지붕 위에서 봤을 때 열 십()자의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부용정은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부용지 북쪽으로는 1776(정조 즉위)에 지은 주합루(宙合樓)가 있다. 주합루의 주합천지 우주와 통한다라는 뜻으로, 2층 규모로 지어졌는데 1층은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이고, 2층은 주합루이다.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은 물과 물고기, 즉 왕과 신하의 관계를 뜻하며 지은 이름이다. 주합루로 들어가기 위해 왕은 어수문으로 출입하지만, 신하들은 어수문 옆 협문으로 출입하였다. 주합루는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부용지 동쪽으로는 왕이 직접 참관하여 과거시험을 행하였던 영화당(暎花堂)이 있다. 영화당의 영화꽃과 어우러진다라는 뜻으로, 현재 영화당에는 영조가 직접 쓴 현판이 걸려있다.

 

부용정 주련(柱聯) 내용 (위치 : 부용정 외부 기둥)

千叢艶色霞流彩(천총염색하류채) : 천 포기 고운 빛깔은 아름답게 흐르는 노을이요,

十里淸香麝裂臍(십리청향사열제) : 십리에 맑은 향은 배꼽 열린 사향일세.

閬苑列仙張翠蓋(낭원열선장취개) : 낭원(閬苑, 낭풍전의 동산)의 여러 신선들이 푸른 일산을 펼친 듯,

大羅千佛擁香城(대라천불옹향성) : 대라(大羅, 하늘의 이름)의 일천 부처가 향성(香城, 불교의 세계, 또는 신선의 세계)을 옹위한 듯.

翠丹交暎臨明鏡(취단교영임명경) : 푸르고 붉은 단청이 거울같이 맑은 물에 일렁이고,

花葉俱香透畫簾(화엽구향투화렴) : 꽃과 잎 모두 향기로운 채 고운 발에 스며드네.

晴萼三千宮臉醉(청악삼천궁검취) : 말간 꽃잎은 삼천 궁녀의 취한 듯한 볼이요,

雨荷五百佛珠圓(우하오백불주원) : 연잎에 맺힌 빗방울은 오백 나한의 둥근 염주로다.

龜戱魚遊秋水裏(귀희어유추수리) : 가을 물 속에서 거북이 놀고 물고기 헤엄치는데,

露繁風善早凉時(노번풍선조량시) : 초가을 서늘한 때 이슬 짙고 바람 좋도다.

 

애련지 일원과 연경당

창덕궁_애련지 일원_기오헌(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애련지 일원_불로문(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애련지 일원_애련정(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애련지 일원_애련지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애련지 일원_애련지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애련지 일원_연경당 1(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애련지 일원_연경당 2(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애련지 일원_연경당 전경(궁능유적본부)

 

애련지(愛蓮池) 권역은 창덕궁 후원의 두 번째 정원으로, 애련지의 애련연꽃을 사랑한다라는 뜻이다. 1692(숙종 18) 숙종은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다. 연꽃을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애련정(愛蓮亭)이라 불렀고,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

 

애련정 주련(柱聯) 내용 (위치 : 애련정 외부 기둥)

雨葉眞珠散(우엽진주산) : 비 맞은 잎사귀에는 진주가 흩어지고,

晴花粉臉明(청화분검명) : 말간 꽃은 화장한 뺨처럼 환하도다.

亭近如來座(정근여래좌) : 정자는 석가여래의 자리와 가깝고,

池容太乙舟(지용태을주) : 연못은 태을주(태일진인(太一眞人)이 타고 있는 연잎 배)를 받아 들였네.

花愛稱君子(화애칭군자) : 꽃을 사랑하여 군자라 일컫고,

龜齡獻聖人(귀령헌성인) : 거북의 수명을 임금님께 바치네.

碧筒供御酒(벽통공어주) : 푸른 대궁으로 어주(御酒)를 바치니,

霞綺散天香(하기산천향) : 노을빛 비단 잎에는 천향(天香)이 흩어지네.

 

애련지 입구 불로문(不老門)을 지나면 왼편에 의두합(倚斗閤)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1827(순조 27) 추존 문조(효명세자)가 애련지 부근에 의두합을 비롯하여 몇 개의 건물을 짓고 애련지와 구분하여 담장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기오헌(奇傲軒, ‘기오’ : 거침없이 호방한 마음을 기탁함)’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의두합과 운경거 두 건물만 남아있다. 의두합과 운경거는 단청이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이다.

 

애련지 서쪽에는 추존 문조(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생전과 사후에 올리는 호칭)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7(순조 27)경에 창건한 연경당(演慶堂)이 있다. 연경당의 연경경사가 널리 퍼진다라는 뜻으로, 사대부 살림집과 유사하게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와 여성의 공간인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 있다. 서재인 선향재(善香齋, ‘선향’ : 좋은 향기가 서림)는 벽돌로 측면 벽을 쌓았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도 이용되었다. 연경당은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연경당 주련(柱聯) 내용 (위치 : 연경당 외부 기둥)

秦城樓閣烟花裏(진성누각연화리) : ()나라 성의 누각은 연화(烟花) 속에 있고,

漢帝山河錦繡中(한제산하금수중) : ()나라 황제의 산하는 금수(錦繡) 속에 있네.

臨事無疑知道力(임사무의지도력) : 일에 임하여 의문이 없으니 도력을 알겠고,

讀書有味覺心閒(독서유미각심한) : 글을 읽음에 참맛이 있으니 마음 한가로움을 깨닫네.

雲裏帝城雙鳳闕(운리제성쌍봉궐) : 구름 속 도성에는 한 쌍의 봉궐(鳳闕)이요,

雨中春樹萬人家(우중춘수만인가) : 빗속의 봄 숲에는 수많은 인가로다.

瑞氣逈浮靑玉案(서기형부청옥안) : 상서로운 기운은 아득히 청옥안(靑玉案)에 떠 있고,

日華遙上赤霜袍(일화요상적상포) : 햇빛은 멀리 적상포(赤霜袍) 위로 솟아 오르네.

雲近蓬萊常五色(운근봉래상오색) : 구름은 봉래궁(蓬萊宮)에 가까워 늘 오색 빛이요,

雪殘鳷鵲亦多時(설잔지작역다시) : 눈은 지작관(鳷鵲觀)에 남아 오랫동안 쌓여있네.

山中老宿依然在(산중노숙의연재) : 산 속의 노스님은 늘 그대로 앉은 채로

案上楞嚴已不看(안상능엄이불간) : 책상 위에 능엄경(楞嚴經)을 이미 보지 않고 있네.

名將存心惟地理(명장존심유지리) : 명장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오직 지리(地理) 뿐이요,

聖門傳業只官書(성문전업지관서) : 성인 문하에 업으로 전하는 것은 다만 관서(官書)일 뿐이네.

九天日月開新運(구천일월개신운) : 구천(九天)의 해와 달이 새로운 운을 열어주니,

萬里雲霞醉太平(만리운하취태평) : 만리의 구름·노을은 태평에 취해 있네.

千里春風回碧巒(천리춘풍회벽만) : 천리에 봄바람은 푸른 봉우리를 돌아오고,

南極祥光兆吉昌(남극상광조길창) : 남극성(南極星)의 상서로운 빛은 길상(吉祥)을 알려오네.

請於上古無爲世(청어상고무위세) : 상고시대와 같은 무위(無爲)의 세상에서

長作天家在野臣(장작천가재야신) : 길이 천자의 백성이 되기를 청하네.

功崇六宇郭中令(공숭육우곽중령) : 공이 온 세상에 높은 이는 곽중령(郭中令)이요,

荷香風共聖之淸(하향풍공성지청) : 연꽃 향기 바람과 함께 하는 이는 성인 중에 맑은 사람일세.

兩京名詔皆高士(양경명조개고사) : 두 서울의 조서로 부르는 자는 모두가 고사이니,

四時和氣及蒼生(사시화기급창생) : 사시에 온화한 기운이 온 백성에게 미치네.

山靜日長仁者壽(산정일장인자수) : 산 고요하고 해는 길어 어진이는 장수하고,

月明人影鏡中來(월명인영경중래) : 달 밝으니 사람 그림자가 거울 속에 비춰오도다.

半窓踈影梅花月(반창소영매화월) : 창 한 켠에 성긴 그림자는 달빛에 매화요,

一榻淸風栢子香(일탑청풍백자향) : 책상에 맑은 바람은 측백의 향기로세.

山逕繞邨松葉暗(산경요촌송엽암) : 산길은 마을을 두르고 솔잎은 짙은데

柴門臨水稻花香(시문임수도화향) : 사립문은 물에 가까워 벼꽃은 향기롭네.

於此閒得少佳趣(어차한득소가취) : 이곳에서 한가히 약간의 아름다운 흥취 얻으니,

亦足以暢敍幽情(역족이창서유정) : 또한 그윽한 정을 펼치기에 족하도다.

淸興高於將上月(청흥고어장상월) : 맑은 흥은 솟아 오르려는 달보다 높고,

深情溢比欲開尊(심정일비욕개준) : 깊은 정은 개봉하려는 술독에 비할 만큼 넘친다네.

僮約屢申松菊徑(동약누신송국경) : 노복과의 약속도 소나무·국화의 길에서 자주 하였고,

水租先報芰荷洲(수조선보기하주) : 수조(水租)도 마름꽃·연꽃 핀 물가에서 먼저 받았네.

春雨杏花虞學士(춘우행화우학사) : 봄비에 살구꽃은 우학사(虞學士)가 노래했고,

酒旗山郭杜司勳(주기산곽두사훈) : 주막 깃발 산 성곽은 두사훈(杜司勳)이 읊었다네.

樂意相關禽對語(낙의상관금대어) : 즐거운 뜻 서로 관계하여 새들은 마주하여 지저귀고,

生香不斷樹交花(생향불단수교화) : 향기 풍겨 끊이지 않으니 나무는 꽃과 서로 어울렸네.

 

선향재 주련(柱聯) 내용 (위치 : 선향재 외부 기둥)

道德摩勒果(도덕마륵과) : 도덕은 마륵(摩勒)의 과일이요,

文章鉢曇花(문장발담화) : 문장은 우담바라의 꽃이로다.

張子野詞伯(장자야사백) : 장자야(張子野)는 사()에 뛰어난 문인이고,

李將軍畫師(이장군화사) : 이장군(李將軍, 이사훈 장군)은 그림에 특출한 화가로다.

汝南尋孟博(여남심맹박) : 여남(汝南) 땅으로 맹박(孟博)을 찾아가고,

高密訪康成(고밀방강성) : 고밀(高密) 땅으로 강성(康成)을 방문한다네.

細讀斜川集(세독사천집) : 사천(斜川)의 문집을 세밀히 읽고,

新烹顧渚茶(신팽고저다) : 고저(顧渚)의 차를 새로 달이네.

養竹不除當路筍(양죽불제당로순) : 대 기르기 좋아하여 길에 자란 죽순도 베지 않고,

愛松留得礙門枝(애송류득애문지) : 솔을 사랑해 문 가린 가지도 남겨 두었네.

史編作鑑推君實(사편작감추군실) : 역사 편찬은 자치통감을 지은 사마군실(司馬君實)을 추대하고,

賦筆凌雲擬子虛(부필능운의자허) : () 짓는 솜씨는 구름을 뛰어넘는 기상의 자허(子虛)에게 비기네.

瀑布之餘雲盡水(폭포지여운진수) : 폭포의 밖에서는 구름이 온통 물이 되고,

茯苓其上樹交花(복령기상수교화) : 복령(茯苓)의 위에서는 나무가 꽃과 어울렸네.

却對眞山看畫圖(각대진산간화도) : 문득 진짜 산을 대하니 그림을 보는 듯하도다.

 

관람지 일원

창덕궁_관람지 일원_관람정(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관람지 일원_관람지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관람지 일원_뽕나무(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관람지 일원_승재정(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관람지 일원_존덕정(궁능유적본부)

창덕궁_관람지 일원_폄우사(궁능유적본부)

 

관람지(觀纜池) 일원은 창덕궁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 일원에는 네모나거나 반달 그리고 둥글고 작은 연못들이 5개 있었는데, 1900년대 이후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렀다.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인존덕정(尊德亭, ‘존덕’ : 덕을 높임),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觀纜亭, ‘관람’ : 닻줄을 바라봄), 서쪽 언덕 위에 있는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砭愚榭, ‘폄우’ :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을 놓아 깨우쳐 경계함), 관람정 맞은편의 승재정(勝在亭, ‘승재’ : 빼어난 경치)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이 있다. 폄우사는 원래 부속채가 딸린 자 모양이었으나 지금은 부속채가 없어져 단출한 모습이고, 숲속에 자리 잡은 승재정은 사모지붕의 날렵한 모습이다. 이곳에 있는 정자 중 1644(인조 22)에 세워진 존덕정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관람정과 승재정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애련지 일원에서 관람지 일원으로 가는 길목에는 수령이 400여 년 된 뽕나무가 있다. 뽕나무의 잎은 달걀 모양의 원형 또는 타원형이고, 뽕나무의 열매를 오디라고 부른다. 창덕궁의 뽕나무는 높이 12m에 가슴 높이 줄기 둘레는 239.5로 뽕나무로서는 보기 드문 큰 나무일 뿐만 아니라 창덕궁 내에 있는 뽕나무 중 가장 크다. 이 뽕나무는 200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존덕정 주련(柱聯) 내용 (위치 : 존덕정 외부 기둥)

盛世娛遊化日長(성세오유화일장) : 태평성세에 즐겁게 놀며 덕화(德化)의 날은 기니,

羣生咸若春風暢(군생함약춘풍창) : 온갖 백성 교화되어 봄바람 화창하네.

庶俗一令趨壽域(서속일령추수역) : 뭇 백성들 한결같이 태평성대로 나아가게 하고,

從官皆許宴蓬山(종관개허연봉산) : 근신(近臣)들도 모두가 봉래산 잔치에 허락받았네.

艶日綺羅香上苑(염일기라향상원) : 고운 봄날 비단 치마는 상림원(上林苑)에 향그럽고,

沸天簫鼓動瑤臺(비천소고동요대) : 하늘까지 치솟는 피리소리·북소리는 요대(瑤臺)를 뒤흔드네.

 

관람정 주련(柱聯) 내용 (위치 : 관람정 외부 기둥)

珠簾繡柱圍黃鵠(주렴수주위황곡) : 구슬 주렴, 비단 기둥에 황곡(黃鵠)이 둘러 있고

錦纜牙檣起白鷗(금람아장기백구) : 비단 닻줄, 상아 돛대에 백구(白鷗)가 날아오르네.

彩䲶靜點銀塘水(채원정점은당수) : 알록달록 원앙이 고요히 은당(銀塘)의 물에 떠 있고

乳燕凉飛玉宇風(유연량비옥우풍) : 제비 새끼는 시원히 옥 처마의 바람 타고 나네.

橋轉彩虹當綺殿(교전채홍당기전) : 다리를 돌아드니 채색 무지개가 화려한 전각과 마주했고

艦浮花鷁近蓬萊(함부화익근봉래) : 배를 띄우니 화려한 익수(鷁首)가 봉래산에 가까워지네.

 

폄우사 주련(柱聯) 내용 (위치 : 폄우사 외부 기둥)

南苑草芳眠錦雉(남원초방면금치) : 남쪽 동산에 풀 고우니 아름다운 꿩이 졸고 있고,

夾城雲㬉下霓旄(협성운난하예모) : 협성(夾城)에 구름 따뜻하니 무지개가 내려오네.

絶壁過雲開錦繡(절벽과운개금수) : 절벽에 구름이 지나가니 수놓은 비단이 펼쳐지고,

踈松隔水奏笙簧(소송격수주생황) : 성긴 솔이 물 건너 편에서 생황을 연주하네.

林下水聲喧笑語(임하수성훤소어) : 숲속 아래 물소리는 웃음소리인양 떠들썩하고,

巖間樹色隱房櫳(암간수색은방롱) : 바위 사이 나무 빛깔은 방 창살을 숨기고 있네.

畫閣條風初拂柳(화각조풍초불류) : 아름다운 누각에 한줄기 바람은 버들을 막 스치고,

銀塘曲水半含苔(은당곡수반함태) : 은빛 연못 물굽이에는 이끼 반쯤 머금었네.

 

승재정 주련(柱聯) 내용 (위치 : 관람정 외부 기둥)

龍蛇亂擭千章木(용사난획천장목) : 용과 뱀은 천 그루 거목(巨木)을 어지러이 휘감았고,

環珮爭鳴百道泉(환패쟁명백도천) : 패옥(珮玉)들은 백 갈래 샘물을 울리는구나.

披香殿上留朱輦(피향전상류주련) : 피향전(披香殿) 위에서 임금 수레 머무니,

太液池邊送玉杯(태액지변송옥배) : 태액지(太液池) 연못가에 옥 술잔을 보내오네.

 

옥류천 일원

창덕궁_옥류천 일원_소요정(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옥류천 일원_오언절구시(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옥류천 일원_옥류천 전체 전경 1(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옥류천 일원_옥류천 전체 전경 2(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옥류천 일원_옥류천(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옥류천 일원_청의정(궁능유적본부)

창덕궁_옥류천 일원_태극정(궁능유적본부)

 

옥류천(玉流川)옥같이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라는 뜻으로,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른다. 1636(인조 14)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逍遙巖)을 깎아 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궁궐지(宮闕志)에 의하면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시로 기록되어 있다.

 

옥류천 주변으로는 소요정(逍遙亭, ‘소요’ : 구속 없이 천천히 노님), 태극정(太極亭, ‘태극’ : 태초의 혼돈한 원기), 농산정(籠山亭, ‘농산’ : 산으로 둘러싸임), 취한정(翠寒亭, ‘취한’ : 푸르고 서늘함), 청의정(淸漪亭, ‘청의’ : 물이 맑음) 등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경관이 조성되었다.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은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 형태로, 현재 궁궐에 있는 유일한 초가지붕 정자이다.

 

소요정 주련(柱聯) 내용 (위치 : 소요정 외부 기둥)

一院有花春晝永(일원유화춘주영) : 온 정원에 꽃이 피어 봄날은 긴데

八方無事詔書稀(팔방무사조서희) : 팔방(八方)이 태평하니 임금의 조서도 드물어라.

露氣曉連靑桂月(노기효련청계월) : 이슬 기운은 새벽이 되어 청계(靑桂)의 달에 이어지고

珮聲遙在紫薇天(패성요재자미천) : 패옥소리 아스라히 자미(紫薇)의 하늘에서 들리도다.

 

태극정 주련(柱聯) 내용 (위치 : 태극정 외부 기둥)

隔窓雲霧生衣上(격창운무생의상) : 창밖의 운무(雲霧)는 옷 위에서 피어오르고

捲幔山川入鏡中(권만산천입경중) : 휘장을 걷자 산천이 거울 속으로 들어오네.

花裏簾櫳晴放燕(화리염롱청방연) : 꽃 속이라, 주렴 창밖에 비 개자 제비 날고

柳邊樓閣曉聞鶯(유변누각효문앵) : 버들 곁이라, 누각에선 새벽녘에 꾀꼬리 소리 들리네.

 

취한정 주련(柱聯) 내용 (위치 : 취한정 외부 기둥)

一庭花影春留月(일정화영춘류월) : 온 뜨락의 꽃 그림자 봄은 달을 붙잡고

滿院松聲夜聽濤(만원송성야청도) : 집안 가득 솔바람소리 밤에 파도 소리 듣는 듯.

九天露湛金盤重(구천로담금반중) : 구천(九天)의 이슬이 짙어 금반이 무겁고

五色雲垂翠盖凝(오색운수취개응) : 오색의 구름이 드리워 푸른 지붕을 감싸네.

寶扇初開移玉座(보선초개이옥좌) : 화려한 부채 막 펼쳐 옥좌(玉座)를 옮기시니

華燈錯出暎朱塵(화등착출영주진) : 꽃 등불이 어지러이 붉은 장막을 비추누나.

鸞輿逈出千門柳(난여형출천문류) : 난여(鸞輿)가 멀리 일천 대문의 버들을 지나서 나와

閣道廻看上苑花(각도회간상원화) : 각도(閣道)에서 고개 돌려 상원(上苑)의 꽃을 바라보네.

種成和露桃千樹(종성화로도천수) : 이슬 머금은 천 그루 복숭아를 심어 놓고

借與摩霄鶴數群(차여마소학수군) : 하늘 높이 나는 학 여러 마리에 내어 주었네.

拂水柳花千萬點(불수유화천만점) : 물을 스치며 버들개지 천만 송이가 피었고

 

청의정 주련(柱聯) 내용 (위치 : 청의정 외부 기둥)

僊露長凝瑤艸碧(선로장응요초벽) : 신선의 이슬은 길이 요초(瑤艸)에 푸르게 맺혔고

彩雲深謢玉芝鮮(채운심호옥지선) : 채색구름은 깊이 옥지(玉芝)를 곱게 감쌌네.

魚躍文波時撥剌(어약문파시발랄) : 물고기는 물위에 뛰어 때로 찰랑거리고

鶯留深樹久俳佪(앵류심수구배회) : 꾀꼬리는 짙은 나무에 들어 오래 머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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