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복궁 소개 -
조선을 상징하는 경복궁(사적)
![]() |
![]() |
![]() |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하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 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중건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 이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 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다. 또한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남았고,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버렸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일원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광화문 - 흥례문 -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을 잇는 중심 부분은 궁궐의 핵심 공간이며,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건축 되었다. 그러나 중심부를 제외한 건축물들은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변화와 통일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었다. 수도 서울의 중심이고 조선의 으뜸 궁궐인 경복궁에서 격조 높고 품위 있는 왕실 문화의 진수를 느껴보자.
경복궁의 명칭 : 경복궁은 조선 왕조가 세워지고 3년 지난 후 완공되었다. 완공된 지 며칠 후에 개국공신 정도전은 태조의명에 따라 경복궁이라는 궁궐 이름을 비롯해 강녕전, 교태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등 주요 전각의 이름을 지었다. 경복궁이라는 이름에는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 경복궁 이야기 -
광화문

경복궁_광화문_광화문 내부(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광화문_광화문 및 월대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광화문_광화문 월대 해치(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광화문_광화문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광화문_광화문 현판(궁능유적본부)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광화’는 ‘군주에 의한 덕화(德化)’라는 뜻이다. 광화문은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다.
광화문은 세 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문은 왕이, 좌우의 홍예문은 왕세자와 신하들이 각각 출입하였다. 또한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두어 시각을 알리는데 사용하였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모두 소실되었다. 이후 1968년 경복궁 정문의 위치로 다시 옮겼으나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위치 또한 제자리를 찾지 못하였다. 현재의 광화문은 201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서 다시 복원하였다.
흥례문

경복궁_흥례문_영제교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흥례문_영제교(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흥례문_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흥례문_흥례문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흥례문_흥례문 현판(궁능유적본부)
흥례문(興禮門)은 경복궁의 중문으로 ‘흥례’는 ‘예를 일으킨다’라는 뜻이다. 원래 홍례문의 이름은 ‘홍례문’이었으나 1867년(고종 4)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흥례문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철거되었다가,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후 2001년에 복원하였다.
흥례문 일곽의 가운데에는 백악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 즉 금천이 흐르고 있는데 그 위로 영제교(永濟橋)라는 다리를 놓았다. 영제교는 세종 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임진왜란 때도 큰 훼손 없이 있었다가 1867년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보수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흥례문과 같이 철거되었다가 2001년에 복원하였다.
근정전과 근정문

경복궁_근정전_근정문 및 행각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근정전_근정문(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근정전_근정전 내부(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근정전_근정전 야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근정전_근정전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근정전_근정전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근정전_근정전 측면 야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근정전_근정전(궁능유적본부)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근정전의 ‘근정’은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 다스리다‘라는 뜻으로,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근정전은 2단의 월대 위에 다시 낮은 기단을 두고 그 위로 중층으로 올린 건물로 안에서 보면 층 구분이 없는 통층(通層)이다.
근정전 앞마당, 즉 조정(朝廷)은 다른 궁궐의 정전과 같이 박석이 깔려있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조정에는 정1품부터 정9품까지의 품계석을 놓았다.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 기둥에는 4신상과 12지신상을 포함하여 28수 별자리상 등을 간결하지만 재치있게 조각하였다. 내부 바닥은 전돌을 깔았고, 북쪽 가운데에 왕의 자리인 어좌를 설치하였다. 어좌 뒤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의 산이 그려진 ‘일월오봉도’를 놓았고 천장에는 칠조룡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근정전에서는 정종, 세종, 세조, 중종, 선조가 왕위에 올랐으며,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근정문(勤政門)은 근정전의 정문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우진각지붕의 형태로, 궁궐 정전의 정문 중 유일하게 2층 규모로 지었다. 근정문은 왕의 장례(국장)가 있을 때 다음 왕의 즉위식을 치렀던 곳으로 이곳에서 단종, 성종, 명종이 왕위에 올랐다. 근정문은 행각을 포함하여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 근정전 행랑 주련(柱聯) 내용 (위치 : 근정문 동쪽 일화문 안)

① 立愛敦親 敎民以睦(입애돈친 교민이목) : 사랑을 확립하고 친족끼리 돈독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을 화목하게 하고,
② 好學樂善 爲世所宗(호학낙선 위세소종) : 배움을 좋아하고 선을 즐김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받드는 바가 된다.
③ 序昭六親 殷道隆盛(서소육친 은도융성) : 질서가 육친(六親)에 밝으니 은나라의 도가 융성하고,
④ 德推九睦 治堯旪龢(덕추구목 치요협화) : 덕이 구족(九族)에 미치니 요임금의 정치가 화목하도다.
⑤ 列卿尙書 落花底春酒(열경상서 낙화저춘주) : 구경(九卿)과 상서(尙書)들은 떨어지는 꽃 아래에서 봄 술을 마시고,
⑥ 王孫公子 芳樹下淸歌(왕손공자 방수하청가) : 왕손과 공자들은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서 청아한 노래를 부르도다.
⑦ 捍禦宗邦 維城維翰(한어종방 유성유한) : 나라를 막고 지키는 것은 성(城)과 중신(重臣)이며,
⑧ 夾介王室 之屛之藩(협개왕실 지병지번) : 왕실을 감싸 보호하는 것은 병(屛)과 번(藩)이로다.
⑨ 休戚與同 忠愛冞篤(휴척여동 충애미독) : 기쁨과 슬픔을 더불어 함께하면 충성심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돈독해지며,
⑩ 恬嬉是戒 文武俱全(염희시계 문무구전) : 편하게 놀고 즐기는 것을 경계하면 문(文)과 무(武)가 두루 온전해진다.
⑪ 天漢殿高 孰不欽敬(천한전고 숙불흠경) : 천한전(天漢殿) 드높으니 그 누가 공경하지 않으리요.
⑫ 春秋門近 地是淸要(춘추문근 지시청요) : 춘추문(春秋門) 가까우니 청요(淸要)의 자리로다.
⑬ 完矣美矣 公子謂善居(완의미의 공자위선거) : 완전하고 아름다움은 공자(公子) 형(荊)의 훌륭한 살림살이를 얘기하는 것이라네.
사정전

경복궁_사정전_만춘전(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사정전_사정전 내부(궁능유적본부) (1)

경복궁_사정전_사정전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사정전_사정전(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사정전_천추전(궁능유적본부)
사정전(思政殿)의 ‘사정’은 ‘선정을 깊이 생각하다’라는 뜻으로, 왕이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이다. 이곳에서 매일 아침 업무 보고와 회의, 경연 들이 이루어졌다. 내부에는 근정전과 같이 왕의 자리인 어좌가 있고, 그 뒤로 왕권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의 산이 그려진 ‘일월오봉도’를 놓았다.
사정전 좌우에는 만춘전(萬春殿, ‘만춘’ : 만년의 봄)과 천추전(千秋殿, ‘천추’ : 천년의 가을)은 사정전의 부속건물로 사정전에 없는 온돌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사계절로 이용이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세 건물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고종 대에 다시 지으면서 독립된 건물로 지어졌다.
사정전 상참의 관련 자료


수정전

경복궁_수정전_내부 1(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수정전_내부 2(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수정전_야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수정전_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수정전_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수정전(修政殿)의 ‘수정’은 ‘정치를 잘 수행하다’라는 뜻으로, 고종 대 편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으나 고종 대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지은 건물이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가 들어섰고, 이후 의정부(議政府)가 내각(內閣)으로 바뀌면서 내각의 청사로 사용되었다.
특히 조선 초기 수정전 일대에는 세종 대에 훈민정음 창제의 산실인 집현전이 있었다. 수정전은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회루

경복궁_경회루_1층 기둥(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경회루_내부(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경회루_야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경회루_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경회루_전체 전경 1(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경회루_전체 전경 2(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경회루_측면(궁능유적본부)
경회루(慶會樓)의 ‘경회’는 ‘경사스러운 연회’라는 뜻으로, 경복궁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과 궁궐의 장엄한 경관을 감상하는 왕실 정원으로 꾸몄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1412년(태종 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다시 만들었다. 성종과 연산군 대에 수리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중건하였다.
경회루의 1층은 48개(둥근 기둥과 네모난 기둥 각 24개)의 높은 돌기둥들만 세웠으며, 2층에 마루를 깔아 연회장으로 이용했다. 추녀마루에는 우리나라 건물 가운데 가장 많은 11개의 잡상(雜像, 지붕 위 네 귀에 여러 가지 신상神像의 모습으로 만들어 얹은 장식 기와)이 있다. 경회루는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풍기대

경복궁_풍기대_전경(궁능유적본부)
풍기대(風旗臺)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재는 깃발을 세운 받침대이다. 이 풍기대는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전체 높이는 224.3cm로 아래에 상을 조각한 대를 놓고 그 위에 구름무늬를 새긴 8각형 모양의 돌기둥을 세운 모습이다. 8각 기둥 맨 위의 중앙에는 깃대를 꽂는 구멍이 있고, 그 아래 기둥 옆으로는 물이 고이지 않게 구멍을 뚫었다. 깃대 끝에 좁고 긴 깃발을 달아 그것이 날리는 방향으로 바람의 방향을 재고 흔들리는 정도로 바람의 세기를 잴 수 있었다. 풍기대는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영추문

경복궁_영추문_배면(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영추문_전경(궁능유적본부)
영추문(迎秋門)은 경복궁의 서문으로, ‘영추’는 ‘가을을 맞이한다’라는 뜻이다. 동문인 건춘문과 대비되는 개념의 이름으로 서쪽 방위의 개념에 맞게 지어졌다. 영추문은 주로 문무백관이 출입하던 곳으로 특히 서쪽 궐내각사에 근무하던 신하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현재의 문은 1975년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되었다.
강녕전

경복궁_강녕전_강녕전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강녕전_내부 2(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강녕전_야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강녕전_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강녕전_측면(궁능유적본부)
강녕전(康寧殿)은 교태전과 함께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침전이다. 강녕전은 왕의 침전으로 ‘강녕’은 ‘편안하고 건강하다’라는 뜻이다. 왕은 이곳에서 독서와 휴식 등 일상생활뿐 아니라 신하들과 은밀한 정무를 보기도 하였다. 강녕전은 ‘정(井)’자 모양으로 9개의 방을 구성하여 가운데 방은 왕이 사용하고, 주위의 방에서는 상궁이 숙직하였다. 건물 앞에는 넓은 월대가 있고,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는 건물이다.
그러나 1917년 창덕궁에 대화재가 나면서 창덕궁의 침전(대조전과 희정당 등)이 소실되자 강녕전을 옮겨다가 희정당 복원에 사용되었고,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강녕전 주변으로는 경성전(慶成殿, ‘경성’ : 완성함을 기뻐함), 연생전(延生殿, ‘연생’ : 생기를 맞이함), 응지당(膺祉堂, ‘응지’ : 복을 받음), 연길당(延吉堂, ‘연길’ : 복을 맞아들임) 등 강녕전 부속건물이 있다.
교태전과 아미산굴뚝

경복궁_교태전_교태전 내부(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교태전_교태전 야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교태전_교태전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교태전_교태전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교태전_교태전 측면(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교태전_아미산굴뚝 야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교태전_아미산굴뚝 전경(궁능유적본부)
교태전(交泰殿)은 강녕전과 함께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침전이자,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교태’는 ‘천지, 음양이 잘 어울려 태평을 이루다’라는 뜻이다. 교태전은 궁궐의 가장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왕비의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중궁전이라고도 부른다. 교태전은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으나 1440년(세종 22)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고 내부 모습은 비슷하나, 건물 앞에 월대는 없다.
1917년 창덕궁에 대화재가 나면서 창덕궁의 침전(대조전과 희정당 등)이 소실되자 교태전을 옮겨다가 대조전 복원에 사용되었고, 지금의 교태전은 1995년에 복원하였다. 교태전 서쪽에는 천문관측 기구를 모아두고 연구하였던 흠경각(欽敬閣, ‘흠경’ : 하늘을 공경하여 공손히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을 줌)과 교태전의 부속건물로 불교 행사를 행하였던 함원전(含元殿, ‘함원’ : 원기를 간직함) 등이 있다.
교태전 뒤로는 아미산(峨嵋山)이라는 왕비를 위한 후원을 조성하였다. 이곳은 계단식 화단과 땅 밑으로 연기 길을 내어 후원으로 연결된 굴뚝이 아름답다. 굴뚝은 4개가 있는데 6각형의 모양으로 사군자, 십장생 등의 무늬를 새겨 악귀를 막고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아미산 굴뚝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자경전과 십장생굴뚝

경복궁_자경전_십장생굴뚝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자경전_십장생굴뚝(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자경전_자경전 내부 1(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자경전_자경전 내부 2(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자경전_자경전 마루(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자경전_자경전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자경전_자경전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자경전(慈慶殿)의 ‘자경’은 ‘어머니의 복을 누린다’라는 뜻으로,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 혜경궁(헌경황후)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지은 ‘자경당’의 유래가 된다. 자경전은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으나 1867년(고종 4)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신정황후 조씨(24대 헌종의 어머니이자 26대 고종의 양어머니, 대한제국 선포 후 황후로 추존됨)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그러나 지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88년(고종 25)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이다. 자경전 주변으로는 복안당(福安堂, ‘복안’ : 복되고 편안함)과 청연루(淸讌樓, ‘청연’ : 조촐한 연회), 협경당(協慶堂, ‘협경’ : 함께 경사를 누림) 등 부속건물을 따로 두었는데 모두 연결되어 있다. 자경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자경전에는 온돌방을 많이 마련했는데, 각 방들과 연결된 8개의 연도를 모아 북쪽 담장에 하나의 큰 굴뚝을 만들었다. 굴뚝 정면 가운데는 해, 산, 물, 돌, 구름, 학, 소나무, 사슴, 거북, 불로초의 십장생 무늬를 넣었고, 그 위아래로는 학, 나티, 불가사리를 배치하여 악귀를 막고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굴뚝으로서의 실용적인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조형미가 빼어나 조선시대 궁궐 굴뚝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경전 십장생굴뚝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동궁 영역

경복궁_동궁 영역_계조당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동궁 영역_계조당(궁능유적본부)

경복궁_동궁 영역_비현각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동궁 영역_자선당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동궁 영역_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동궁(東宮) 영역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교육공간이자 생활공간으로 궁궐의 동쪽에 있어 동궁, 또는 세자궁이라고 부른다.
현재 동궁 영역에는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인 자선당(資善堂)과 왕세자의 교육과 정무를 보던 비현각(丕顯閣), 그리고 동궁의 정당(正堂)인 계조당(繼照堂)이 있다. 자선당의 ‘자선’은 ‘착한 성품을 기른다’, 비현각의 ‘비현’은 ‘덕을 크게 밝히다’, 계조당의 ‘계조’는 ‘계승하여 비춘다’라는 뜻으로 모두 왕세자와 관련된 뜻으로 건물 이름을 지었다.
동궁은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으나 1427년(세종 9)부터 동궁을 지었고, 몇 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거쳐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867년(고종 4)에 다시 지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동궁 일대가 모두 철거되었으며, 자선당과 비현각은 1999년에, 계조당은 2023년에 복원하였다.
흥복전

경복궁_흥복전_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흥복전_전체 전경 측면(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흥복전_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흥복전_정면(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흥복전_측면(궁능유적본부)
흥복전(興福殿)은 고종 대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처음 지어졌으며, ‘흥복’의 뜻은 ‘복을 일으키다’라는 뜻이다. 이곳은 고종 연간에 독일,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외국 사신을 접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신정황후 조씨(24대 헌종의 어머니이자 26대 고종의 양어머니, 대한제국 선포 후 황후로 추존됨)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흥복전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가 2020년에 복원하였다.
함화당과 집경당

경복궁_함화당과 집경당_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함화당과 집경당_집경당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함화당과 집경당_집경당(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함화당과 집경당_함화당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함화당과 집경당_함화당(궁능유적본부)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은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고 1890년(고종 27)에 지은 건물이다. 함화당의 ‘함화’는 ‘모두가 화합하다’라는 뜻이고, 집경당의 ‘집경’은 ‘계속하여 공경한다’라는 뜻으로 두 건물은 별도의 건물이지만 복도로 이어져 있다.
함화당은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되었고, 집경당은 고종이 신하들과 경서를 읽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두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도 철거되지 않은 건물인데 몇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춘문

경복궁_건춘문_배면(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건춘문_전경(궁능유적본부)
건춘문(建春門)은 경복궁의 동문으로, ‘건춘’의 뜻은 ‘봄을 세우다’라는 뜻이다. 서문인 영추문과 대비되는 개념의 이름으로 동쪽 방위의 개념에 맞게 지어졌다.
건춘문은 주로 왕세자와 동궁 영역이 위치한 관청에서 일하는 신하들이 이용하였다. 현재의 문은 고종 대에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지은 문이다.
향원정

경복궁_향원정_내부 1(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향원정_내부 2(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향원정_열상진원샘(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향원정_전경 1(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향원정_전경 2(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향원정_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향원정_취향교(궁능유적본부)
향원정(香遠亭)의 ‘향원’은 ‘향이 멀리 간다’라는 뜻으로, 원래 이곳에는 세조 대에 세운 취로정이 있었다. 그러다가 1873년(고종 10)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향원지)을 파서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2층의 육모지붕의 형태로 지었다. 향원정을 가기 위해 지은 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라는 뜻에 취향교(醉香橋)라고 불렀다. 원래 취향교는 무지개 모양의 흰색 다리로 조성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을 1953년에 복원하였는데 향원정 남쪽으로 복원되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향원정 보수공사 때 취향교는 원래의 자리로 복원하였다.
그리고 향원지 서북쪽에는 향원지의 근원이 되는 열상진원(洌上眞源)샘은 향원지를 시작으로 경회루 연못을 거쳐 경복궁 밖으로 흘러 나갔다. 향원정은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 향원정 주련(柱聯) 내용 (위치 : 향원정 외부 기둥)

① 玉池龍躍舞(옥지용약무) : 아름다운 연못에 용이 뛰쳐 오르며 춤춘다.
② 千山華月逈(천산화월형) : 천산에는 빛나는 달이 멀리까지 비추고,
③ 萬里衆星明(만리중성명) : 만리에는 뭇 별들이 밝게 빛나네.
④ 崑閬雲霞積(곤랑운하적) : 곤륜산 꼭대기에는 구름 노을 쌓였고,
⑤ 蓬壺日月長(봉호일월장) : 신선 사는 봉래에는 세월이 길도다.
건청궁

경복궁_건청궁_건청궁 곤녕합(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건청궁_건청궁 입구(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건청궁_건청궁 장안당 내부(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건청궁_건청궁 장안당(궁능유적본부)

경복궁_건청궁_건청궁 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건청궁(乾淸宮)은 1873년(고종 10)에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궁 안의 궁이다. ‘건청’은 ‘하늘은 맑다’라는 뜻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건청궁의 왕의 생활공간인 장안당(長安堂, ‘장안’ : 오랫동안 평안하게 지냄)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곤녕합(坤寧閤, ‘곤녕’ : 땅이 편안함)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안당과 곤녕합은 복도로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고종과 명성황후는 10년 정도 생활하였다. 그러나 1895년(고종 32) 곤녕합 옥호루(玉壺樓, ‘옥호’ : 옥으로 만든 호리병)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 고종은 이듬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이후 1909년(융희 3)에 철거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미술관이 들어섰다가 철거된 후, 2007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집옥재

경복궁_집옥재_내부(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집옥재_도서관(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집옥재_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집옥재_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집옥재_집옥재(궁능유적본부)
집옥재(集玉齋)의 ‘집옥’은 ‘옥처럼 귀한 보배를 모으다’라는 뜻으로, 집옥재를 중심으로 왼쪽에 팔우정(八隅亭), 오른쪽에 협길당(協吉堂, ‘협길’ : 함께 복을 누림)이 있다. 이곳은 1891년(고종 28)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와 협길당 등을 건청궁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으로, 고종의 서재와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
집옥재는 경복궁의 다른 전각과 달리 청나라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밖에서 보면 단층으로 보이나 내부는 2층으로 되어있다. 팔우정은 팔각 누각으로 기둥 상부에 꽃과 넝쿨무늬를 화려하게 조각하였고, 유리로 창을 만들었다. 협길당은 고유한 조선식 건물로 온돌방을 두어 휴식 장소로 사용하였다. 세 건물은 복도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집옥재는 경복궁의 전각 중 유일하게 현판이 세로형으로 되어있다.
⊙ 집옥재 주련(柱聯) 내용 (위치 : 집옥재 외부 기둥)

① 灑潤含膏 雲氣多壽(쇄윤함고 운기다수) : 촉촉이 젖어 기름지니 운기(雲氣)는 장수하게 해주고,
② 稱物納照 鏡心彌光(칭물납조 경심미광) : 만나는 사물마다 비추어주니 거울은 더욱 밝도다.
③ 玉樹淩霄雲煙煥采(옥수능소 운연환채) : 아름다운 나무가 하늘에 솟으니 안개구름 찬란히 빛나고,
④ 寶花留硏 筆墨生香(보화류연 필묵생향) : 귀한 꽃이 벼룻가에 머무니 필묵(筆墨)에 향기가 나도다.
⑤ 西山朝來 致有爽氣(서산조래 치유상기) : 서산에 아침이 되니 상쾌한 기운이 이르고,
⑥ 太華夜碧 人聞淸鐘(태화야벽 인문청종) : 태화산(太華山)에 밤 깊으니 맑은 종소리를 듣도다.
태원전

경복궁_태원전_내부(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태원전_영사재(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태원전_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태원전_전체 전경(궁능유적본부)

경복궁_태원전_태원전(궁능유적본부)
태원전(泰元殿)의 ‘태원’은 ‘하늘’을 뜻하는데, 이곳은 1868년(고종 5)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태조의 어진을 모셨고, 이후에는 신정황후 조씨와 명성황후 민씨가 세상을 떠난 후 빈전(殯殿, 왕과 왕비가 세상을 떠난 후 발인하기 전까지 재궁(관)을 모셔둔 건물)으로 사용되었다.
태원전 주변에는 부속 건물인 문경전(文慶殿)과 공묵재(恭默齋, ‘공묵’ : 공손히 침묵함), 영사재(永思齋, ‘영사’ : 오래 생각하여 가슴에 새김) 등 의례용 건물이 있다. 문경전은 혼전(魂殿, 왕과 왕비의 신주를 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임시로 신주를 모시는 건물)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태원전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가, 1960년대 청와대와 인접하여 육군 수도경비사령부와 청와대 경호부대가 있었으나, 1993년 모두 이전한 후 2006년에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신무문

경복궁_신무문_배면(궁능유적본부)

경복궁_신무문_전경(궁능유적본부)
신무문(神武門)은 경복궁은 북문으로, ‘신무’는 ‘뛰어난 무용(武勇)‘ ’신령스러운 현무(玄武)‘라는 뜻이다. 신무문은 1433년(세종 15)에 지어졌다가 1475년(성종 6) 문의 이름을 신무문이라 붙였다.
신무문 쪽은 인적이 드물었으나 신하들의 공훈을 기록해 놓은 회맹단이 있어 왕이 공신들의 충성을 다짐하는 모임이 있는 회맹제에 참석할 때 이 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또 영조 대에는 숙빈 최씨의 사당인 육상궁을 참배하기 위하여 경복궁터를 길로 삼았는데, 이때 신무문을 자주 이용하였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