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번호제도 개선(2021년) 이전 발간자료에 수록된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한 자료로 지정번호가 일부 표기되어 있을 수 있는 점 이용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치구분계곡명계곡현황유적/유물명조사년도조사기관조사구분출처자료
| 삼릉계_제3사지 주변 민간신앙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제3사지 주변 민간신앙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유적현황
시대지번면적소유위치와 현황
| 시대불명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0(임) |
| 50㎡ |
| 내남면 배동 산70(임) - 사유지 |
| 제3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26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높이 4.5m의 자연굴을 이용한 기도처가 있다. |

위치구분계곡명계곡현황유적/유물명조사년도조사기관조사구분출처자료
| 삼릉계_용왕당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용왕당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유적현황
시대지번면적소유위치와 현황
| 시대불명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0(임) |
| 100㎡ |
| 내남면 배동 산70(임) - 사유지 |
| 이 터는 육존불 바로 아래 계곡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계곡 벽면에 석축을 1m 정도 쌓아 감실을 두었다. 이 공간 앞쪽에는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4m 가량의 웅덩이를 만들고 있어 제사를 자주 지내는 곳이다. |
| 삼릉계_금송정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금송정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금송정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유적현황
| 조선시대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46(임) |
| 40㎡ |
| 내남면 배동 산46(임) - 사유지 |
| 이곳은 상선암 마애여래좌상 위쪽 정상부로, 기암곡으로 내려가는 등산로 상에 암반이 있는 곳이다. 북, 서, 동쪽이 암반으로 연결되어 있고, 남쪽은 트여 급경사를 이룬다. 건물지는 2.7×2.7m 크기의 단칸 구조로 추정되고,서쪽의 남서 기둥은 암반에 25×15㎝ 크기의 홈을 파서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지 주변에 통일신라시대 와편들이 다수 산재되어 있고, 이형석재가 1점 있다. 신라 景德王때 玉寶高란 사람이 지리산에 들어가 거문고를 배운지오십년만에 스스로 新調를 지어 타자 玄鶴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으므로 玄鶴琴또는 玄琴이라 부르며, 琴松亭은 寶高가 노닐며 즐기던 곳이라고[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있다. |
| 삼릉계_제10사지(금오봉아래절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제10사지(금오봉아래절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제10사지(금오봉아래절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유적현황
| 통일신라~고려시대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2-6(임) |
| 460㎡ |
| 내남면 배동 산72-6(임) - 국유지 |
| 제10사지는 큰냉곡에서 가장 안쪽으로, 금오산 정상에서 약 300m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2단의 축대와 작은 건물지가 있다. 사지내부는 신우대로 덮여 있으며 상수도 연결선이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사지의 규모는 남북 20m/동서 23m이나, 현재 많이 무너지고경사를 이루고 있어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건물지는 서쪽을 향하여 있고 축대는 2단으로 되어 있으나, 1단은 대부분유실되고 현재 길이 1.6m/높이 60㎝만 남아있다. 2단은 남북방향으로 길이 47m/높이 3.2m로 잘 남아있고, 2단 축대에서 40m 위쪽에는 작은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토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
유물현황
| 건물지 축대 |


| 삼릉계_제9사지(상선암절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제9사지(상선암절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제9사지(상선암절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유적현황
| 통일신라~조선시대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2-6(임) |
| 800㎡ |
| 내남면 배동 산72-6(임) - 국유지 |
| 제9사지는 제6사지에서 길을 따라 380m를 오르면 현존 사찰인上禪庵이 있다. 이곳은 근대에 지어진 법당과 요사채가 있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 좌측으로 상체부가 대부분 파손된 線刻菩薩??像이있다. 과거에 있었던 건물지들 위에 현존 건물이 축조되어 흔적을알 수 없으나, 오르는 길가에 장대석 1매와 주변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와편들이 수습된다. |
유물현황
| 선각보살입상 마애여래좌상 마애선각여래좌상 |
| ○ 선각보살입상 이 보살상은 상선암 요사채 바로 옆에 있다. 현재 상체와 발 부분이 결실되었는데, 보살상이 넘어지면서 파손된 것으로 원래 세워졌던 위치는 알 수 없다. 크기는 현재 높이 290㎝.최대 너비 100㎝로, 파손 이전의 크기는 약 5..6m에 이르는 대형입상이었을 것으로추정된다. 보살상은 다리 위로 흘러내린 옷주름, 길게 드리워져 있는 띠와 영락장식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보살상의 맞은편에는 지름 15㎝.깊이 10㎝의 석등 간주석을꽂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있다. ○ 마애여래좌상(삼릉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시도유형문화유산) 상선암 뒤쪽으로 약 150m 가량 떨어진 암벽에 남쪽을 향하여 높이 7m.너비 5m의 광배형으로 생긴 암벽에 여래좌상이 있다. 자연 암반을 둥글게 다듬어 광배로 삼고 그 내부에 여래좌상을 새겼는데, 고부조의 머리에 세부는 입체적으로 조각하여 볼륨을 강하게 표현하였다. 신체는 편평하며 옷주름과 손, 발 등은 모두 선각으로 처리하여 대조를 이룬다. 얼굴은 살이 많아 방형에 가깝고 눈과 눈썹, 코, 입은 세밀하게 조각하여 예리한 인상을 준다. 통견의 법의는 가슴 아래 깊게‘U’자형을이루며 내려오고, 그 안에는 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표현되었다. 옷주름은 선각으로 구불구불하게 복잡하며 느슨하게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엄지, 중지, 약지를 맞대고 設法印을 취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결가부좌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대좌는 중대석이생략된 채 앙련과 복련이 맞붙어 있고, 앙련의 연판 내부는 보상화문으로 장식하였다. 불상의 높이 521㎝.무릎 너비 350㎝로 얼굴 표정은 매우 숙련된 솜씨이나, 평판적인 신체 표현, 힘이 빠진 옷주름 선 등으로 보아 9세기 불상양식을 반영하는 巨佛像群에 속한다. ○ 마애선각여래좌상 삼릉계의 정상부 마애여래좌상에서 서쪽으로 약 8m 떨어진 지점,즉 마애여래좌상과 같은 바위의 背面에 또 하나의 마애선각여래좌상이 있다. 마애여래좌상에서는 보이지 않고 정상부에서 禪房谷으로 내려가는 길, 즉 線刻如來..像으로 가는 길로 조금만 내려가면 분묘가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오전에는 잘 보이지 않고 오후가 되어야 어느 정도 모습이 드러난다. 通肩의 法衣로 감싼 체구는 건장한 편이며, 둥근 얼굴에 눈은 가늘고 길게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올려 說法印을, 왼손은 들어 가슴 앞에올리고 있으며 원형의 頭光과 身光을 갖추고 있으나, 암면 전체에 균열과 마모가 심해 세부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대체로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경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불상 높이 150㎝.무릎너비 105㎝이다. |
| ,,, |
| 석등간주공 |
| 경주 남산 삼릉계 선각보살입상/ 경주 남산 삼릉계 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 삼릉계 마애선각여래좌상 |
| 비지정유산/ 시도유형문화유산/ 비지정유산 |




| 삼릉계_제8사지(작은냉골윗절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제8사지(작은냉골윗절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제8사지(작은냉골윗절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유적현황
| 통일신라~조선시대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2-6(임) |
| 540㎡ |
| 내남면 배동 산72-6(임) - 국유지 |
| 제8사지는 제7사지에서 200m 정도 올라가서축대가 있는 곳이다. 서향의 축대는 길이 5.5m/높이 2m로 주변에서 통일신라, 고려시대 기와편과 분청접시편들이 수습되고 있다. 이곳에서 북동방향으로 60m 올라가면, 남북 18m/동서 20m규모의 건물지 내에 163×145×38㎝ 크기의 방형대석 1기가 있다. 방형대석은 상면에 60㎝ 너비로다듬은 흔적이 있고, 이 아래의 큰 암반 사이에서기와편이 수습되었다. |
유물현황
| 건물지 축대 |
| 방형대석 |

| 삼릉계_제8사지(작은냉골윗절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제8사지(작은냉골윗절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제8사지(작은냉골윗절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유적현황
| 통일신라~조선시대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2-6(임) |
| 540㎡ |
| 내남면 배동 산72-6(임) - 국유지 |
| 제8사지는 제7사지에서 200m 정도 올라가서축대가 있는 곳이다. 서향의 축대는 길이 5.5m/높이 2m로 주변에서 통일신라, 고려시대 기와편과 분청접시편들이 수습되고 있다. 이곳에서 북동방향으로 60m 올라가면, 남북 18m/동서 20m규모의 건물지 내에 163×145×38㎝ 크기의 방형대석 1기가 있다. 방형대석은 상면에 60㎝ 너비로다듬은 흔적이 있고, 이 아래의 큰 암반 사이에서기와편이 수습되었다. |
유물현황
| 건물지 축대 |
| 방형대석 |

| 삼릉계_제7사지(작은냉골아래절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제7사지(작은냉골아래절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제7사지(작은냉골아래절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유적현황
| 통일신라시대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2-6(임) |
| 1,230㎡ |
| 내남면 배동 산72-6(임) - 국유지 |
| 제2사지에서 계곡을 따라 200m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지류가 있다. 이곳이 작은 냉곡과 상선암 앞쪽에서 흘러내리는 큰 냉곡이 만나는 지점으로, 이곳에서 240m 정도 올라가서 축대가 있는 곳이 제7사지이다. 서향의 건물지는 전체적으로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아랫단이 남북 19m/동서 28m, 중간이 남북 27m/동서 21m, 상단이 남북 8m/동서 12m이다.아랫단에는 전면에 축대가 남아 있으며 6.1 5.6m의 건물지가 있다. 절터 내에는 탑부재와 장대석이 있고 새로이 옥개석 1매가 확인되었다.중간 건물지에는 탑 기단으로 추정되는 하층기단면석 등이 있어 원래의 탑지로 추정된다. 기단면석 1은 길이 45.5㎝/높이15.5㎝/폭 22.3㎝이고, 가운데에는 폭 16.5㎝의 탱주가 조각되어 있다. 기단면석 2는 길이 89㎝/높이 14.5㎝/폭 18㎝이고 7곳의 정자국이 있다. 새로이 확인된 옥개석은 3단의 옥개받침을갖고 있으며, 가로, 세로는 64㎝/두께 22㎝이다. 1단 탑신받침각 35㎝, 최하단 옥개받침너비 각 41.5㎝이고, 낙수면은 완만하게 처리하였으며 그 두께는 중앙부 5㎝/끝부분 8㎝ 정도이다.이 석탑은 하층기단부가 있는 형식으로 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옥개석 위쪽으로는 장대석으로 추정되는 석재 3매가 있다.장대석 1은 길이 153㎝/ 너비 24.5~34.5㎝/높이 22.5㎝로 전면과 측면에 다듬은 흔적이 있다. 장대석 2는 길이126㎝/ 너비 32㎝/높이 23㎝이고, 장대석 1 아래에 직각으로 엇갈려 놓여있다. 장대석 3은 길이 127㎝/너비 28~47㎝/높이 22㎝로 전면과 후면 모서리부분에 다듬은 흔적이 있다. |
유물현황
| 건물지 축대 |
| 탑재,탑재 |


| 삼릉계_제7사지(작은냉골아래절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제7사지(작은냉골아래절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제7사지(작은냉골아래절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유적현황
| 통일신라시대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2-6(임) |
| 1,230㎡ |
| 내남면 배동 산72-6(임) - 국유지 |
| 제2사지에서 계곡을 따라 200m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지류가 있다. 이곳이 작은 냉곡과 상선암 앞쪽에서 흘러내리는 큰 냉곡이 만나는 지점으로, 이곳에서 240m 정도 올라가서 축대가 있는 곳이 제7사지이다. 서향의 건물지는 전체적으로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아랫단이 남북 19m/동서 28m, 중간이 남북 27m/동서 21m, 상단이 남북 8m/동서 12m이다.아랫단에는 전면에 축대가 남아 있으며 6.1 5.6m의 건물지가 있다. 절터 내에는 탑부재와 장대석이 있고 새로이 옥개석 1매가 확인되었다.중간 건물지에는 탑 기단으로 추정되는 하층기단면석 등이 있어 원래의 탑지로 추정된다. 기단면석 1은 길이 45.5㎝/높이15.5㎝/폭 22.3㎝이고, 가운데에는 폭 16.5㎝의 탱주가 조각되어 있다. 기단면석 2는 길이 89㎝/높이 14.5㎝/폭 18㎝이고 7곳의 정자국이 있다. 새로이 확인된 옥개석은 3단의 옥개받침을갖고 있으며, 가로, 세로는 64㎝/두께 22㎝이다. 1단 탑신받침각 35㎝, 최하단 옥개받침너비 각 41.5㎝이고, 낙수면은 완만하게 처리하였으며 그 두께는 중앙부 5㎝/끝부분 8㎝ 정도이다.이 석탑은 하층기단부가 있는 형식으로 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옥개석 위쪽으로는 장대석으로 추정되는 석재 3매가 있다.장대석 1은 길이 153㎝/ 너비 24.5~34.5㎝/높이 22.5㎝로 전면과 측면에 다듬은 흔적이 있다. 장대석 2는 길이126㎝/ 너비 32㎝/높이 23㎝이고, 장대석 1 아래에 직각으로 엇갈려 놓여있다. 장대석 3은 길이 127㎝/너비 28~47㎝/높이 22㎝로 전면과 후면 모서리부분에 다듬은 흔적이 있다. |
유물현황
| 건물지 축대 |
| 탑재,탑재 |


| 삼릉계_제6사지(석불좌상절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제6사지(석불좌상절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제6사지(석불좌상절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유적현황
| 통일신라시대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2-6(임) |
| 2,600㎡ |
| 내남면 배동 산72-6(임) - 국유지 |
| 제6사지는 제5사지에서 동쪽으로 150m 정도 가면 石造如來坐像(보물)이 있는 곳이다. 제4사지에서는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표지석에서 왼쪽으로 경사진 곳을 오르면 불상이 바로 나타난다. 불상 앞에서 바라보면 남쪽의 계곡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불상 아래에는 독수리바위가 있다. 불상 남쪽으로는 石燈址가 있고 비탈진 곳에 석탑의 부재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고,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삼층석탑이 삼릉계에서 출토되었다고하여, 이 탑을 삼릉계 제6사지 삼층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 뒤쪽에는 선방굴이 있다. 그리고 불상에서 뒤쪽 암반을 넘어 약 40m 거리에는 절벽 사이에 마련된 좁은 터가 있다. 원래 이곳은 石造藥師如來坐像이 안치되어 있었으나, 1914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긴 후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중에 있다. 그리고 上禪庵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얼굴과 가슴까지 새긴 線刻磨崖佛이 있다. 이 2구의 불상으로 인하여 제6사지가 2개의 사지로 구분될 가능성도 제시되었지만, 더 이상 건물지가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전혀 없는 점으로 보아 한 사역으로 추정된다. 건물지는 2곳이 확인된다. |
유물현황
| 건물지2 축대 |
| ○ 건물지 건물지 1은 석조여래좌상 아래 동쪽에 있는데 크기는 11.9×11.4m이며 잔존석축은 10m 정도 남아있다. 3..5단으로 쌓았으며, 높이는 1.2m 정도이다. 건물지 가운데 분묘가 있고, 동편에는 적심석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있는데,지름은 1.2m이다. 건물지 2는 건물지 1에서 30m 정도 떨어진 석불좌상의 남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높은 축대로 자연암반 사이를 연결하여 석축을 만들고있다. 현재 건물지 내부는 신우대로 덮혀있어 정확한 건물지의 파악은 어렵다. 일제강점기 당시 석등지대석이 주변에 있었으나, 당시 없어졌다고 한다. |
| 석조여래좌상 마애선각여래좌상 석조약사여래좌상 |
| ○ 석조여래좌상(보물) 이 불상은 보물(1980.6.11 지정)로 경주시 배동 산 71번지에 위치한다. 光背와 턱 부분이 파손되었을 뿐 거의 완전한 상태이다. 1923년 조사 당시 불상은 앞쪽으로 엎어져 있었고 불두는 아래쪽에 떨어져 있었으며, 光背는 뒤쪽에 넘어져 있던 것을 그 해 12월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후 지금은 光背가 역시 파손된 채 뒤에 놓여져 있고 불상의 얼굴은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으며, 남쪽의 계곡을 바라보고있다. 섬세하게 조각된 ..髮의 머리 위에 둥근 肉鉅가 나지막하게 솟아 있고, 반쯤 뜬 가늘고 긴 눈은 자비로운 모습이다. 1970년 이전에민간인이 코 아래 부분과 입, 턱 부분을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나, 얼굴이 너무 길어져 상호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남아있는 눈썹과 눈매에는 위엄이 느껴져 단정한 얼굴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사시 불두는 신체와 달리 제작하여 촉을꽂아 결합하였다고 하나, 당시에도 코 아래부분은 결실되어 있었다. 짧은 목에는 三道가 있고,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가슴, 넓은 무릎 등은 안정감 있는 신체를 잘 표현하고 있다. 右肩偏袒의 法衣는 얇고,背面에도 일정한 간격의 계단식 옷주름을 표현하였다. 法衣의 간결한 옷주름은 기본적으로 石窟庵本尊佛과 유사하나, 手印의 표현은 완전하지 못하다. 觸地를 취한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충분히 내려오지 못하였으며, 왼손 역시 腹部앞이 아니라 왼쪽 다리 위에 놓여져 있다. 또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넓게 결가부좌한 자세는 안정감 있으나, 가슴과 두 팔의 양감은 석굴암 본존불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가슴과팔에 걸친 옷주름과 양다리 사이의 부채꼴 옷주름은 石窟庵本尊佛과 같다. 더욱이 대좌 상면의 부채꼴 옷주름은 석굴암 본존불의 정통계보를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좌는 상, 중, 하대로 구성되었으며 중대석은 8각형이다. 상대석의 연잎 안에는 花文이 첨가되어 있고, 밑면에는 8각형의 상대받침이 1단으로 마련되었다. 팔각형의 중대석은 낮은 편으로, 각 면에는 첨정형의 眼象文이 새겨져 있다. 하대석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2단의 8각형 중대 받침을 갖추고 있다. 광배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마련하고, 寶相華文과 火焰文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전체적으로 불상의 크기에 비해 대좌는 낮고, 광배는 크며 신체도 상체에 비해 하체의 양감이 강조되어 안정감을 준다. 또한 신체 표현은 둔감하고 형식적으로 흘러간 반면 대좌나 광배의 세부 표현은 화려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통일신라 후기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이 불상은 9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대좌를 포함한 현재 높이 238㎝.佛身의 높이 137㎝.무릎 너비 105㎝이다. 대좌의 높이는 101㎝이며, 광배를 복원하면 높이는약 2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 석조약사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뒤쪽 암반을 넘어 약 40m 거리에는 절벽 사이에 마련된 좁은 터가 있다. 이곳에는 불상 1구가원위치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1914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져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현재불상이 있던 곳은 2단으로 쌓은 축대가 부분적으로 남아있고, 내부에는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다. 높이 3.3m의불상을 안치하기에는 내부공간이 다소 협소한 편이다. 불상은 광배, 대좌를 완전히 갖추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머리에는 크고 낮은 육계가 알맞은 조화를 이루며솟아 있고,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원만하나 미소가 사라진 근엄한 표정이다. 얼굴에는 활형으로 예리하게 그어진 눈썹, 가늘면서도 길고 약간 치켜 올라간 두 눈, 적당한 높이의 코, 꼭 다문 입, 부푼 눈두덩 등은 부처의 위엄과 권위를 표현하였다. 양쪽 귀는 길어 어깨에 닿고 짧은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다. 통견의 법의를 입고 오른쪽어깨에서 내려온 옷자락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와 뾰족한삼각형 끝단을 이루고 있다. 왼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촉지인을 취하고, 왼손은 오른발 위에 올려 약함을 쥐고 있어 항마촉지인의 약사여래좌상이다. 광배는 원형에 가까운 거신광으로 2줄의 선을 넣어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였다. 內區에는 화불과 영락을 새겨 장식하였고, 外區는 다소 투박한 화염문을 새겼다. 대좌는 통일신라시대전형적인 3단의 팔각대좌로 상대석에는 仰蓮의 이중연화문이, 하대석에는 복련의 복판연화문이 있다. 다른 불상에 비해 다소 높게 표현된중대석은 각면에 장방형의 안상을 새기고 그 내부는 향로와 천인상으로 장엄하였다. ○ 마애선각여래좌상 보물 제666호인 석조여래좌상을 지나 上禪庵으로 향하는 등산로에서 서쪽 암반을 바라보면 線刻의 磨崖佛이 새겨져 있다. 자세히 보면머리와 어깨 부분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 있으나, 그 이하는 미완성이다. 素髮의 머리에 肉鉅가 솟아 있고, 둥근 얼굴에는 이목구비가뚜렷하다. 짧은 목에는 三道가 분명하고, 넓고 각이 진 어깨는 비록 미완성작이나 당당한 체구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좁은 이마와白毫, 그리고 두 눈썹과 눈 사이를 매우 좁게 표현한 점 등은 삼릉계 제5사지 마애여래좌상의 세부표현과 유사하다. 이러한 세부표현으로보아 불상은 통일신라 말기인 10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현재 높이 약 80㎝.어깨 너비 약 130㎝이다. |
| 삼층석탑 석등 부재,삼층석탑 석등 부재,삼층석탑 석등 부재,삼층석탑 석등 부재,삼층석탑 석등 부재,삼층석탑 석등 부재,삼층석탑 석등 부재,삼층석탑 석등 부재 |
| ○ 삼층석탑 석조여래좌상 앞 계곡 쪽의 암반 위에 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조사 당시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정원에 전시중인 삼층석탑이 삼릉계에서 출토되었다고 하여,318) 이 탑이 삼릉계 제6사지 삼층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탑은 기단부를 자연 바위로 삼은 지암곡 제3사지 삼층석탑, 비파곡 제2사지 삼층석탑과 같은 형식이다. 현재 자연기단으로 추정되는 곳은 2.8 2m 정도 편평하게 되어있다. 2층옥개석과 3층탑신석, 3층옥개석과 노반이 한 돌로 되어 있다. 각형 2단 받침석 위에 바로 1층탑신석이 놓이고, 1.2층탑신석은 양우주가 있는 별석으로 만들었으나, 3층탑신석은 2층옥개석과 한 돌로 만들었다. 또한 1.2층옥개석의 옥개받침은 5단이나, 3층옥개석의 옥개받침은 4단이고, 노반석은 3층옥개석과 한돌로 만들어졌다. 각층 옥개석의 탑신받침은 각형 1단으로 마련되었고, 낙수면은 완만하게 내려온다. 이 석탑은 전체 높이 216㎝.1층옥개석 길이 98㎝.1층 탑신석 높이 53㎝로 소형이며,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3층은 4단으로 되어있는 점과 추녀마루의 곡선 등으로 볼 때 9세기 후반에 제작된 소형탑으로 판단된다. |
| 굴바위 |
| ○ 석조여래좌상 뒤 굴바위 석불좌상 뒤쪽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굴바위가 있는데 이곳은 기도처로 이용되고 있다. 입구 부분에 난 틈을 돌을 쌓아 막아 안쪽으로 제단을 마련하였다. 입구의 크기는 높이 50㎝.폭 30㎝ 정도 되는데 내부로 들어가면 1×2m 크기의 넓은 공간이 있다. |
| 국립중앙박물관 망실 |
|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경주 남산 삼릉계 삼층석탑 |
| 보물/ 비지정유산 |


유적_21_경주남산_삼릉계-제6사지-석조여래좌상_경상북도_미상_경주_제1유형

유적_22_경주남산_삼릉계-제6사지-마애선각여래좌상_경상북도_미상_경주_제1유형

유적_23_경주남산_삼릉계-제6사지-삼층석탑(국립경주박물관 소장)_경상북도_미상_경주_제1유형

유적_216_경주남산_삼릉계-제6사지(석불좌상절터)-석조약사여래좌상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321_경주남산_삼릉계-제6사지(국립경주박물관)-삼층석탑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708_경주남산_삼릉계-돌탑(積石)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721_경주남산_삼릉계-産神堂 명문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722_경주남산_삼릉계-産神堂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734_경주남산_삼릉계-독수리바위(鷲巖)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 삼릉계_제5사지(마애여래좌상절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제5사지(마애여래좌상절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제5사지(마애여래좌상절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유적현황
| 통일신라시대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1(임) |
| 260㎡ |
| 내남면 배동 산71(임) - 사유지 |
| 제5사지는 제3사지에서 서북쪽으로 260m 정도 바위 능선을 타고 올라가서 높이 약 10m의 바위면에 서쪽을 향해 앉아 있는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곳이다. 불상 아래쪽에 분묘의 축대로 이용되는 곳에 기와편이 흩어져 있어 불상과 관련되는 사지로 추정되고 있을뿐, 현재로는 건물지의 축대 등이 정확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없다.불상 앞에는 흔들바위가, 왼쪽에는 부부가 껴안고 있는 형상으로 생긴 부부바위가 있다. 시도유형문화유산인 이 불상은 높이 약10m의 바위면에 서쪽을 향해 앉아 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신체는 선각하였고, 얼굴과 손 등 중요한 부분은 약간 도드라지게 새겨 강조한 독특한 조각수법이다.素髮의 머리 위에는 둥글고 낮은 肉鉅가 있고, 귀가 길어 양 어깨에 닿았다. 넙적하면서도 긴 얼굴은 신체에 비해 다소 큰 편이고, 좁은 이마 중앙에는 큼직한 백호가 있다. 얼굴에는 가늘고 약간 치켜올라간 눈, 긴 코, 두텁고 큰 입술로 투박하게 표현하였다. 목에는三道가 가늘게 새겨져 있고, 둥근 어깨와 무릎은 양감있게 표현하였다. 통견의 법의는 얇은 신체에 밀착되어 있으며 옷주름 또한 가늘게 선각되어 있다. 두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맺어 위 아래로 마주보고있는 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광배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있으며 대좌는 단판의 覆蓮연화대좌이다.불상의 크기는 높이 224㎝/무릎 너비 170㎝으로 조각수법으로보아 10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유물현황
| 축대 |
| 마애여래좌상 |
| , |
| 와편 |
| 경주 남산 삼릉계 마애여래좌상 |
| 비지정유산 |


| 삼릉계_제4사지(육존불북편절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제4사지(육존불북편절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제4사지(육존불북편절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유적현황
| 통일신라시대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0(임) |
| 400㎡ |
| 내남면 배동 산70(임) - 사유지 |
| 제4사지는 제3사지 서쪽으로 작은 계곡 지류의 상류쪽에 위치하여 건물지 2개소가 남아 있는 곳이다. 제3사지와 가까워 동일사역으로추정되었지만, 불상 뒤편으로 먼 거리를 두고 법당이 조영되는 경우가 드물어 별개의 절터로 구분하였다. 남쪽으로 개울과 접해있는 건물지 1은 허물어지긴 했지만 자연석으로 3~5단 정도 쌓은 석축이 길이 8m/높이 1.2m 정도 남아 있으며, 내부에는 2기의 분묘가 나란히있다. 건물지 2는 건물지 1 동편으로 길이 6m 정도의 큰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가 있어 건물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축대 위로는 분묘1기가 있다. |
유물현황
| 건물지2 축대 |
| , |


| 삼릉계_제3사지(육존불절터) |
| 삼릉계 |
| 계곡의 입구에 전아달라왕(傳阿達羅王), 전신덕왕(傳神德王), 전경명왕(傳景明王)의 능인 삼릉(三陵)이 있어 삼릉계(三陵溪)라 부른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있고, 정상까지 오르기 쉬워 가장 잘 알려진 계곡이다. 계곡의 길이는 1.84㎞로,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약수곡과의 분수령에서 흘러오는 작은 냉곡과 상선암(上禪庵)쪽의 큰 냉곡으로 나누어지고, 하류에서 삿갓곡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냉곡'은 여름에도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냉곡이라 하기도 하고, 추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냉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제3사지(육존불절터) |
| 1998 ~ 2004 |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정밀학술조사 |
| 2004_경주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제3사지(육존불절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유적현황
| 통일신라시대 |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배동 산70(임) |
| 195㎡ |
| 내남면 배동 산70(임) - 사유지 |
| 제3사지는 제2사지에서 140m 정도 올라가면 동쪽으로 언덕 위에 병풍을 둘러 놓은 듯한 바위가 동서로 길게 있고 이곳에 선각삼존불입상과 선각삼존불좌상이 있는 곳이다. 현재 건물지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선각된 바위면에 약 10㎝ 크기의‘ ’형 홈이 있어 이곳에 목조가구를 설치하여 법당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기 조사에서는 바로 옆에 축대가 일부 확인되었다고 하나, 건물이 축조될 만큼의 크기는 되지 않는다. 선각삼존불좌상 앞에는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는 옥개석편이 있다. |
유물현황
| 축대 |
| 선각육존불상 |
| ○ 삼릉계 선각육존불상(시도유형문화유산) 삼릉계 제1사지 석조여래좌상에서 약 150m 정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위에 병풍을 둘러 놓은 듯한 바위가 동서로 두 곳에 있다.서쪽 바위는 높이가 약 4m이고 너비는 3.58m, 동쪽 바위는 서쪽 바위면에서 3m 뒤에 서쪽 바위와 같은 방향으로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높이는 역시 4m 정도이고 너비는 7.27m 이다. 남향한 바위면은 거칠게 다듬고 동서쪽에 각각 삼존상을 새겨 전체 6구의 불보살상이 있다. 서면에는 가운데 본존입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좌상을 배치하였다. 삼존 모두 원형의 두광과 覆蓮의 연화대좌를 표현하였다. 본존불은 둥근 얼굴에 목에는 두 줄로 된 三道를 표현하였다. 둥글면서 벌어진 어깨는 강건한 느낌을 주면서 허리는 매우 가늘게 표현하였고, 우견편단의 법의를 입었다. 좌우협시보살상은 각각 꿇어앉은 자세로 본존을 향하여 꽃 공양을 하고 있는 자세이다. 특히 우협시보살상은 오른쪽 팔 아래에 천의 자락이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동면에는 본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을 배치하였다. 본존불은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큼직한 육계에 얼굴은 살이 올라 원만하고, 목에는 三道를 두 줄의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둥근 어깨는 강건한 느낌을 주고, 법의는 우견편단을 입었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왼손은 손바닥을 펴 배 앞에 대고 있다. 우협시보살은 두광을 갖추고 연화대좌 위에 서 있는데, 오른손은 들어 손등을 위로 하였고 왼손은 늘어뜨려 裙衣자락을 가볍게 잡고 있다. 두 발은 발꿈치를 중심으로 좌우로 향하고 있다. 특히 우협시보살상은 상체는 ..身인채 裙衣를 입고 있는데 허리 아래에서 띠로 묶었다. 목에는 세 개의 둥근 구슬이 달린 영락장식이 보이는데, 이것은 나머지 보살상에도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요소이다. 우협시보살상의 표현 기법 역시 좌협시보살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바위 표면의 절리로 인해 마멸이 심한 편이다. 바위 상면에는 홈을 파서 물길을 돌려놓았고, 기둥을 세웠던 흔적과 주변에 기와편이흩어져 있어 바위 상면에는 가구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 탑재,탑재,탑재,탑재 |
| ○ 탑재 선각삼존불좌상 앞에는 파손이 심한 탑재가 있다. 크기는 65×65㎝로 낙수면은 모두 결실되었다. 옥개받침도 2단만이 남아 있고, 전체 높이는 22㎝이다. 현재 이곳에는 다른 탑재가 없어 원래 상류의 사지에서 굴러 떨어진 탑재로 추정된다. |
| 굴바위 |
| ○ 선각육존불상 남편 굴바위 육존불에서 50m 정도 내려와 등산로 남편에 높이 1.7m.폭 2.5m.깊이 3.5m 되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굴이 있는 바위가 있다. 바위앞쪽으로는 2m 폭의 석축을 1m 정도 쌓아서 감실을 놓아두었고, 굴 내부의 왼편으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제단을 볼 수 있다. 감실옆으로 연결된 바위면에도 민속신앙이 행해진 흔적이 있고, 감실이 놓인 석축 앞으로 4m 정도의 넓은 단이 있다. |
| 경주 남산 삼릉계 선각육존불상 |
| 시도유형문화유산 |

유적_88_경주남산_삼릉계-제3사지(육존불절터)-선각삼존불입상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89_경주남산_삼릉계-제3사지(육존불절터)-선각삼존불입상 세부-1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90_경주남산_삼릉계-제3사지(육존불절터)-선각삼존불입상 세부-2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91_경주남산_삼릉계-제3사지(육존불절터)-선각삼존불입상 세부-3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87_경주남산_삼릉계-제3사지(육존불절터)-선각삼존불입상과 선각삼존불좌상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92_경주남산_삼릉계-제3사지(육존불절터)-선각삼존불좌상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93_경주남산_삼릉계-제3사지(육존불절터)-선각삼존불좌상 세부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311_경주남산_삼릉계-제3사지(육존불절터)-탑재-옥개석(삼릉계)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312_경주남산_삼릉계-제3사지(육존불절터)-탑재-탑신석(삼릉계)_경상북도_2000_경주_제1유형

유적_14_경주남산_삼릉계-제3사지-전경_경상북도_미상_경주_제1유형

유적_15_경주남산_삼릉계-제3사지-전면 무너진 축대_경상북도_미상_경주_제1유형
'▣【동해자료실】▣ > ◈유네스코,국가유산청◈'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라문화유적 (0) | 2025.10.15 |
|---|---|
| 신라문화유적 (0) | 2025.10.15 |
| 신라문화유적 (0) | 2025.10.14 |
| 2021 한국고고학저널 (0) | 2025.10.14 |
| 2021 Journal of Korean Archaeology (0) | 2025.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