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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에 달린 격자무늬 날개가 하는 일은?

동해건설산업 2020. 8. 13. 14:45

로켓에 달린 격자무늬 날개가 하는 일은?

 

2020. 08. 05.

 

작년 7월 26일, 중국 쓰촨(四川)성 위성발사센터에서 창정(長征) 2C 로켓이 발사되었습니다. 우주굴기를 표방한 중국은 최근 우주 개발에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지요. 위성을 실은 로켓 발사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국은 물론 바깥에서도 이번 발사에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는데요. 종전까지 보이지 않던 장치 하나를 장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리드 핀(Grid Fin)’으로 불리는 격자형 날개였습니다.

 

발사체의 성격은 다르지만, 2016년 6월에도 같은 장치가 등장했었어요.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 ‘무수단(화성 12호)’을 발사하고, 사진을 공개했는데 전에 없던 장치 하나가 포착되었죠. 미사일 하단에 마치 파리채처럼 보이는 장치가 8개 달려 있었던 겁니다. 이것을 놓고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발전했다’, ‘여전히 과거 기술에 머물러 있다’ 등등 잠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이 장치 역시 그리드 핀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장치가 뭐길래……. 이 정도면 그리드 핀의 정체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 동체에 부착된 격자무늬 날개 형태의 그리드 핀. <사진 출처=스페이스X>

 

중국이 발사한 우주발사체 하나가 관심을 끈 이유

 

우선 중국의 창정 2C 로켓부터 살펴봐야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그리드 핀 장치가 장착된 창정 2C 로켓이 인공위성을 싣고 발사되었는데요. 발사 후 약 2시간 뒤 이 로켓에서 분리된 하단 로켓 잔해물이 미리 유도한 낙하지점에 떨어졌습니다. 바로 그리드 핀을 조종해 하단 로켓을 원하는 지점에 낙하시키는 데 성공한 거죠. 가장 먼저 흥분한 것은 역시 중국이었습니다. 중국은 곧바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그리드 핀을 로켓 발사에 적용해 성공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중국 창정 2C 로켓 영상

 

그리드 핀은 모양 그대로 격자형 지느러미, 혹은 격자형 날개로 불립니다. 우주발사체의 1단 로켓에 달아 발사 과정에서 본체에서 분리된 1단 로켓을 원하는 지점에 낙하하도록 유도하는 장치입니다. 스페이스X 등 미국 민간 우주기업이 보유한 우주 로켓 재활용의 전 단계로 평가되는 기술입니다. 다시 말해 중국이 이 그리드 핀을 붙인 로켓을 발사하고, 원하는 지점에 낙하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머지않아 로켓 재활용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까지는 로켓 재활용 기술을 보유하고, 실제 성공한 나라는 미국뿐입니다. 중국은 물론 다른 나라도 창정 2C 로켓 발사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 이유를 아시겠죠.

창정(長征) 2C 로켓에 부착된 그리드 핀. 중국은 이 장치를 이용해 발사한 로켓을 원하는 지점에 낙하시켰다. <사진 출처=www.scmp.com>

 

중국은 2018년에만 모두 38기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정도로 우주발사체를 자주 발사합니다. 그동안 발사 후 로켓이 민간인 거주 지역 인근에 떨어지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고 합니다. 발사 후 로켓을 조종해 안전한 지역에 낙하시키는 기술이 필요했던 거죠. 마침 전 세계 우주 개발 분야는 발사 비용 절감이 최대 이슈로 등장했고, 로켓 재활용이 발사체 비용 절감의 유력한 방법 중 하나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우주 선진국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기술이지만, 선뜻 실현할 수 없는 기술을 중국이 독자 개발에 성공한 겁니다.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그리드 핀을 펼친 모습. <사진 출처=스페이스X>

 

그리드 핀이 필수 장치인 재활용 발사체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과거 냉전 시대에는 우주개발에서 경제성보다는 기술적 선점이 최우선 고려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옛 소련의 붕괴로 경쟁 요인이 사라지고, 우주개발 예산이 많이 삭감되면서 우주개발이 한동안 침체기를 맞기도 했지요. 이로 인해 우주개발에서 경제성과 비용 절감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재사용 발사체 연구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이스X 팰컨9 회수와 그리드 핀

 

궤도선 회수 기술과 부스터 회수 기술 등을 이용해 이제는 우주발사체 재사용 기술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는데요. 스페이스X의 팰컨9과 블루오리진의 뉴 셰퍼드 발사체가 재사용 회수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스페이스X의 팰컨9은 단 분리 후 3번의 연소 추진을 더하면서 추가적으로 반동제어장치(RCS, Reaction Control System), 4개의 그리드 핀, 그리고 랜딩 기어 등을 사용해 발사된 로켓을 안전하게 회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그리드 핀은 발사체 회수 및 재사용을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장치인 셈이죠.

 

스페이스X는 2018년 5월 팰컨9의 다섯 번째 버전인 ‘블록(Block)5’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는데요. 이날 발사된 블록5의 가장 큰 장점은 로켓 재활용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점인데요. 스페이스X는 앞서 회수한 팰컨9 로켓 가운데 재발사에 성공한 로켓이 10개가 넘지만, 3회 이상 재활용 발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블록5는 별도의 보수 작업 없이 10번까지 사용할 수 있고, 적절한 점검과 수리, 정비를 거치면 최대 100회까지도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장치를 개조하고, 특히 그리드 핀 재질도 일회용 알루미늄에서 영구 사용할 수 있는 티타늄으로 교체하기도 했습니다.

미사일 꼬리 부분에 부착된 격자무늬 날개인 그리드 핀이 보인다. <사진 출처=wikipedia>

 

미사일은 비행 안정성, 발사체는 낙하 안정성 높여

 

그리드 핀은 격자를 의미하는 그리드(Grid)와 날개를 의미하는 핀(Fin)의 합성어로 격자무늬의 내부 구조를 갖는 날개를 의미합니다. 팰컨9의 경우 그리드 핀은 부스터 상단부에 장착되어 초기에는 접힌 상태로 발사됩니다. 발사 후 본체에서 부스터가 분리되면 그리드 핀이 펼쳐지는데요. 그리드 핀 조종을 통해 부스터를 원하는 낙하지점으로 유도하게 됩니다. 그리드 핀은 1970년대 옛 소련의 미사일과 로켓에 처음 사용되어 공기 브레이크의 기능을 하면서 비행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는데요. 이후 유체역학을 이용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많은 실험을 거친 끝에 그리드 핀의 유동 구간별 특성에 대한 자료를 풍부하게 확보하게 되면서 정밀한 자세 제어가 가능해졌습니다.

 

특히 그리드 핀은 아음속(亞音速. 음속보다 약간 느린 속도)과 초음속 구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데요.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비행체

 

가 주변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 발생하는 공력가열을 줄일 수 있고, 접힌 상태에서 발사할 수 있어 보관성과 발사 편의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2016년 발사된 북한 미사일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러한 그리드 핀을 장착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화성 12호에 이어 그해 공개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도 이전보다 사거리가 크게 늘어난 특징을 보였는데요. 전문가들은 미사일 하단부에 그리드 핀이 부착된 것을 외형상 드러난 가장 큰 변화로 꼽았습니다. 옛 소련의 미사일이 그랬던 것처럼 미사일 동체의 중심을 잡으면서 공기 저항으로 동체가 흔들리는 것을 막는 보조 날개 역할을 한 것이죠.

‘어떻게 잘 쏠까’보다 ‘어떻게 잘 추락시킬까’ 고민

 

초기 로켓이나 미사일에 적용된 기술이라고 해서 낡은 기술은 아니라는 점을 그리드 핀은 잘 보여줍니다. 모양도 보기에 따라 큰 파리채처럼 보인다고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겉모습으로 쓰임새와 성능을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도 보여주고요. 러시아의 SS-20, SS-25 등의 미사일에도 장착되어 있지만, 우주발사체 분야에서 가장 ‘핫’한 기술을 선보이고 있는 스페이스X의 로켓에도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우주개발에서 미국을 따라잡으려는 중국도 공들이고 있는 기술 가운데 하나입니다. 앞으로 로켓이 발사되면 동체에 그리드 핀이 부착되어 있는지 살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소유스 로켓에 부착된 그리드 핀. <사진 출처=Military Wiki>

 

끝으로 중국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겠습니다. 중국의 창정 2C 로켓에 장착된 그리드 핀을 개발한 주역 10여 명은 모두 35세가 채 되지 않은 젊은 엔지니어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은 “우리에게 누구도 그리드 핀을 개발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다른 엔지니어들이 로켓을 ‘어떻게 잘 쏘아 올릴까’를 고민할 때 이들은 ‘어떻게 잘 추락시킬까’를 고민했다고 하죠. 발상의 전환, 그리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도전해볼 수 있는 연구개발 환경을 자랑한 것인데요. 어쩌면 ‘무엇을 개발했느냐’보다 ‘어떻게 개발했느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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