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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연료로 사용하는 전차가 있었다?

동해건설산업 2020. 6. 28. 10:23

원자력 연료로 사용하는 전차가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서 TV-8 전차 설계…방사능 위험으로 중단

 

2020. 06. 24.

 

일본에 2발의 원자탄이 떨어지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다. 그리고 원자탄이 열어젖힌 전후 시대는 명실공히 핵시대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미국 이외에도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대 주요 전승연합국이 모두 핵무장에 돌입했다. 또한 핵의 평화적 이용, 즉 동력원으로서의 이용에 필요한 연구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물론, 원자력을 이용한 이동체(차량, 선박, 항공기)의 개발도 열심히 진행되었다.

TV-8의 시제차 ⒸWikipedia

 

원자력은 얼핏 생각하면 지극히 이상적인 에너지원이다. 무엇보다도 에너지 밀도가 엄청나게 높다. 가솔린 연료의 에너지는 kg당 46.4메가 줄. 디젤 연료의 에너지는 kg당 48메가 줄이다. 그러나 원자로의 연료인 저농축 우라늄은 kg당 무려 518만 4000메가 줄의 에너지를 자랑한다. 그렇다면 이런 원자력을 이동체의 연료로 사용한다면 실로 무제한의 항속거리를 자랑하는 것이다. 다 사용한 핵연료를 교체할 때까지는 말이다.

 

특히나 전차의 경우 이 점은 매우 매력적이다. 전차는 배나 항공기에 비해 항속거리가 매우 짧다. 특히 1940~1950년대 당시의 전차 기술로는 전차의 항속거리를 200km 이상으로 늘리기도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항속거리 6400km 이상(원자력 전차의 개발 당시 실제로 제시되었던 제원이다)의 전차가 나온다면 연료 보급 없이도 파리를 출발해 모스크바를 경유해 우크라이나까지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전차병이 섭취할 물과 식량은 공급해 줘야 하지만, 그것만 있으면 된다. 연료가 떨어진 전차들이 중간에 멈춰 설 일도, 지휘관들이 연료를 먼저 차지하려고 아웅다웅할 일도 없다. 원자력 전차의 아이디어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21세기에 봐도 혁신적인 설계

 

1955년 미국의 자동차 제작사이자 유수의 전차 개발 회사이던 크라이슬러사는 원자력으로 움직일 뿐 아니라,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핵전쟁에서도 생존 가능한 전차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제시된 전차 개발 기획안이 바로 TV-8이다.

 

TV-8의 디자인, 제원과 성능은 지금 봐도 혁신적이고 미래적이었다. 일단 일반적인 전차에 비해 차대가 작았다. 대신 포탑은 부피가 매우 컸고, 마치 오징어의 몸통을 연상케 하는 유선형이었다. 이 포탑 안에 전 승무원(4명)은 물론 탄약, 심지어는 엔진까지 들어가는 설계였다. 총중량은 25톤으로 상당히 가벼웠다. 포탑이 15톤이고 차대가 10톤이었다. 포탑과 차대를 분리하면 당시의 수송기로도 쉽게 공수가 가능했다. 또한 수륙양용 기능도 있었다. 포탑의 부피가 크고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물에 떴다.

 

우선 기동력부터 살펴보면, 300마력 급 크라이슬러 V-8 엔진(시제차용. 양산차에서는 당연히 원자로였다)을 통해 발전기를 작동시키고, 이 발전기로 전기 모터를 구동시켜 작동되는 하이브리드방식이었다. 수상에서는 포탑 후방의 워터 제트를 작동시켜 전진했다.

 

무장으로는 주포로 구경 90mm T208 활강포 1문, 주포공축 기관총으로 30구경 기관총 2정, 그 외에 포탑 상부에 원격조종식 50구경 기관총 1정을 장착하고 있었다. 장갑은 수륙양용 성능을 얻기 위해 중공장갑 구조를 채택했다. 중공장갑이란 장갑판을 외부 장갑과 내부 장갑 2중으로 하고 외부 장갑과 내부 장갑 사이에 상당한 공간을 둔 장갑을 말한다. 또한 외부 관측용으로 CCTV도 설치되어 있었다. 때문에 외부 관측 시 승무원이 위험하게 몸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TV-8의 개념도. 수륙양용 기능과 내부 구조를 묘사하고 있다. ⒸWikipedia

 

원자력 기관이 발목 잡아

 

그러나 TV-8 계획을 검토한 미 육군은 1956년 4월 23일, 개발 중지를 지시하고 만다.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원자력 추진기관 때문이었다. 전투에서 전차 손실 대부분은 항속거리 부족이 아닌, 적의 공격으로 인해 발생한다. 그런데 원자력 전차가 적의 피격으로 격파당한다면? 원자로가 깨질 경우 격파 지점 주변 상당 부분의 면적은 바로 방사능에 오염된다. 그리고 방사능 오염지대에는 아군도 적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전차 잔해를 치울 엄두도 내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TV-8은 그다지 방어력을 중시한 설계도 아니었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복합장갑이 없고 강철제 장갑만 있던 1950년대였으므로 전차의 방어력은 중량에 비례하던 시대였다. 그런 판국에 중량 25톤짜리 전차의 방어력은 이미 뻔했다.

 

결국 TV-8은 가솔린 엔진으로 구동되는 시제차 1대만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와서 보면 참 바보 같은 아이디어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아이디어도 일단 얘기는 꺼내 볼 수 있던 당시의 시대상이 느껴진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잿더미가 되어 버린 유럽 대륙을 대신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사상 최대의 호황기를 누리던 1950년대의 미국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The Science Times]